18일 바둑TV 스튜디오에서 막을 내린 제23기 GS칼텍스배 프로기전 결승5국에서 신진서가 이세돌을 상대로 278수 만에 백 불계승을 거두고 종합전적 3승 2패로 정상에 올랐다.
14일과 16일 열린 결승 1·3국은 신진서 승, 15일과 17일 열린 결승2·4국은 이세돌의 승리로 최종국까지 이른 이번 결승전은 마지막 5국을 신진서가 잡아내면서 명승부의 대미를 장식했다. 신진서의 이번 우승은 입단 후 통산 여섯 번째이고, 국내 종합기전 우승은 2015년 렛츠런파크배 이후 2년 5개월 만이다.
제23기 GS칼텍스배 결승에서 ‘젊은 피’ 신진서 9단이 이세돌 9단을 종합전적 3승 2패로 눌렀다.
이세돌 9단은 전 세계 바둑계를 통틀어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다. 그는 인공지능 알파고와 둬도 어울리고 중국 일인자 커제, 세계랭킹 1위 박정환과 대결하면 ‘세기의 대결’이라는 타이틀이 따라붙는다. 여자기사와 대결해도 화제고 과거의 제왕 이창호와 다시 만나도 뉴스가 된다. 비록 최강의 권좌에선 내려왔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큰 화제를 몰고 다니는 이세돌이다.
그런 이세돌 9단이 이번엔 ‘밀레니엄 키드’라는 2000년생 신예 신진서와 만났다. 그것도 국내기전 중 제일 권위가 높다는 GS칼텍스배 결승전에서. 전전의 예상은 신진서 쪽이었다. 상대전적에서 3연패로 밀리고 있다지만 과거의 것이고, 신진서의 기량이 점점 올라오고 있는 데 반해 이세돌은 내리막길이란 이미지 탓인지 바둑전문 기자들의 예상은 65 대 35 정도로 신진서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역시 이세돌”이란 탄성이 기자실을 지배했다. 1국이 신진서의 완승으로 끝나면서 싱거운 승부가 될 것으로 보였지만, 이세돌은 난전으로 점철된 2국을 기어코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다시 3국을 내줘 막판에 몰렸지만 오뚜기처럼 4국에서 또 일어났다. 그리고 4국까지 백을 든 기사가 승리하는 ‘백번필승’의 흐름 속에 마지막 5국을 맞게 된다.
잔수와 전투력이 강한 기사들답게 시리즈 내내 쉴 새 없이 펀치를 주고받았던 명승부는 5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도(흑 이세돌 vs 백 신진서)
5국에서 백을 든 신진서는 ‘붙임수 3방’으로 바둑을 끝냈는데 그 1탄이 바로 ‘1도’ 백1이다. 좌하 흑의 배경을 바탕으로 이세돌이 ▲로 전개하자 백1의 기상천외한 붙임으로 바둑을 흔들어간 것. 싸움의 신이라 불렸던 이세돌조차 움찔거리게 한 독수(毒手)였다.
2도
백의 두 번째 붙임은 ‘2도’ 백6이었다. 흑1은 좌변 △에 대해 총부리를 겨눈 것. 이에 대한 백6은 흑의 선택을 묻고 있다. 만일 흑이 A로 젖힌다면 백B로 쉽게 살게 되며, 흑B라면 백A로 뻗어 어지러운 싸움이 될 것이다. 이세돌은 신진서의 물음에 즉각적인 답을 피한 채 일단 7로 기수를 돌렸다.
3도
5국의 승부처는 우변이었다. ‘3도’ 서로가 주문을 거부하니 똬리를 틀고 앉아있는 것 같은 구렁이 같은 흑백의 돌들이 바둑판 곳곳에 산재하고 있다. 우변 백1로 가르고 나왔을 때 흑2가 기세가 지나쳤다. 백3·5가 안성맞춤의 드리블. 백7까지 양쪽 흑돌이 무거워져 순식간에 백쪽으로 바둑이 기운다.
4도
‘4도’ 백1에는 흑2로 뻗어두는 게 정수였다. 이쪽이 힘차다. 중앙 △석점이 폐석으로 변하고 귀의 흑도 4·6이면 사는 모양을 갖출 수 있다. A의 단점도 남아 있어 이랬으면 피차 어려운 승부였을 것이다.
5도
‘5도’ 백의 ‘아름다운 붙임’ 마지막은 백4였다. 이것으로 흑은 위나 아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계속해서….
6도
‘6도’ 흑은 일단 6까지 아래를 정비했지만 백9에 더 이상 탈출이 불가능하다. 할 수 없이 흑10으로 끊어 16까지 고기값이라도 벌어보려 하지만, 중앙은 싸발라도 칼끝 같은 △가 대기하고 있어 위협적인 모양이 아니다. 결국 중앙 흑 7점이 떨어지면서 사실상 여기서 승부가 결정되고 말았다.
어렵게 승리한 신진서는 굳이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국후 인터뷰에서 신진서는 “이민배(2017년 결승에서 미위팅에 패)와 TV아시아선수권대회(2016년 결승에서 리친청에 패)에서 계속 져서 이번엔 꼭 우승하고 싶었는데 뜻대로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어린 시절에는 나보다 강한 상대를 만나서 바둑이 유리해지면 조금 떨리기도 해 실수가 잦았는데 이젠 그런 건 없다. 웬만해선 긴장을 하지 않는다. 잠도 잘 잔다”며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였다.
평소 공부 방법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는 공격보다 타개를 좋아하는데 요즘은 유연한 공격을 통해 이득을 보는 연구를 중시하고 있다. 평소 국가대표팀 훈련을 하고 있는 것 외에 인공지능으로 연구하는 시간 비중이 많다. 하루 5시간 이상 인공지능으로 실전과 기보 보기를 반복하며 연구한다. 중국 인공지능 ‘줴이’를 위주로 하는데 최근엔 페이스북이 개발한 ‘엘프고’도 사용한다. 엘프고는 집 컴퓨터에 설치해 놓지는 않았고 국가대표팀 연구실에서 사용한다”고 말했다. 인공지능 연구는 전혀 하지 않는다는 이세돌 9단과는 대조적인 연구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신진서는 “감각이란 것은 재능 절반에 노력 절반이 더해져 나오는 것”이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면서, “랭킹1위 박정환 9단이나 커제 9단도 우승 횟수가 많지 않을 정도로 지금은 춘추전국시대다. 뛰어난 기사가 워낙 많아 나도 당장 우승을 해야겠다고 생각해 무리하지 않으려고 한다. 서서히 세계대회 우승을 노려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