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수원대 교수 | ||
할아버지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곳. 그 곳은 뿌리 없이 존재하는 생명은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곳이기도 하고, 세상에 죽음이 없는 생은 없다는 진리를 드러내고 있는 진짜 학교이기도 하다. 그 학교에서 나는 아버지에게, 그리고 아버지의 아버지에게 절을 하면서, 나를 위해 그렇게 절을 하는 마음으로 살았을 그들의 마음결을 느낀다. 나는 또 누구를 위해 그렇게 절을 하는 마음이 될까.
그런데 그리움으로 착해지는 땅, 무상을 가르치는 이 겸손의 언덕에 길이 난다고 한다. 4차선 도로가 난단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내가 찾는 땅, 이 땅에서 나는, 잠시 그러나 깊이, 위로를 받고 다시 도시로 나온다. 그러다 보니 비교적 자주 아버지가 누워 있는 이곳을 찾는 편인데, 지금껏 한 번도 그 2차선 국도가 불편했던 적이 없다.
그런데 여기에 웬 4차선 도로인가. 길에 대한 향수나 그리움의 향기 없이 그저 빨리 가는 게 목적인 그런 길이 나면,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내게는 그러그러한 조상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유일한 끈인 음성의 선산은 어떻게 달라질까?
나는 빨리 가는 길도 싫고 개발이익이 생기는 것도 싫다. 그러나 또 어쩔 것인가? 강제수용이라고 하는데! 북한산도 뚫리고 천성산도 뚫리고 새만금도 위태위태한데, 이 작은 동산을 위해 누가 개발을 포기할 것인가. 그저 기막힌 노릇이라고 우리 가족끼리만 혀만 차고 있는데 이번에는 내가 사는 아파트 뒷산이 또 망가진단다.
지금 내가 사는 이 작은 아파트를 살 때 나를 제일 행복하게 했던 존재가 바로 서리풀 공원이라고 불리는 아파트 뒷산이었다. 한 바퀴 도는데 30~40분밖에 걸리지 않는 작은 산이지만 그 산은 우리의 숨통이었다. 해만 있으면 거기엔 언제나 사람이 있었다.
인간이 해와 함께 몸을 움직이고 달과 함께 잠드는 존재라는 걸 어렴풋이 가르쳐 준 산! 그 산에 인간이 낸 길을 따라 걸으면서 나는 잠시나마 도시생활의 영악스러움과 여유 없음을 벗어버리고 착해지고 넉넉해지는 느낌을 즐겼다.
그런데 그 산 4만 평 중의 2만 평을 훼손하면서 문화관광부가 국립디지털 도서관을 짓는단다. 디지털이라고 하는 것은 공간을 잡아먹지 않는 공간인 줄 알았는데 그 작은 산의 반이나 훼손하고 들어서다니!
디지털 도서관이라면 도서를 열람하는 곳이 아니라 도서전자 자료를 관리하는 곳일 텐데 구태여 우리가 아끼고 사랑하는 땅을 훼손하면서 지을 필요가 있을까? 지역주민의 생명줄을 끊는 일에 구청장이 동의해주었을까. 그렇다면 그는 구청장으로 자격이 없는 게 아닌지.
서울시내에 있는 작은 숲은 숲이 우거진 시골의 작은 숲이 아니다. 그것마저 없으면 도시는 생명이 살 수 없는 폐허다. 이 삭막한 도시에 자꾸자꾸 나무를 심는 것은 당연히 해야될 일이지만, 기존의 있는 서울 시내의 숲은 더 이상 훼손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도시의 숨통이고 도시인의 표정이다. 건조한 도시의 삶을 그나마 촉촉하게 적셔주는 이 숲을 잃고 나면 이 동네는 또 어떻게 달라질까?
경제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가난한 도시! 탐욕이 풍요로워질수록 그만큼 야위어 가는 인간의 영혼! 정말 찰떡궁합이다.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