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9일 설현은 ‘유명 유투버 성추행 사건’ 청원글을 올린 수지의 인스타그램에 ‘좋아요’를 눌렀다. 지난 4월에는 잡지 인터뷰에서 ‘여성의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언급해 페미니즘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사진=설현 인스타그램
설현은 19일 이 글에 ‘좋아요’를 누른 뒤 자신의 인스타그램 팔로잉 목록에서 배우 유아인, 가수 아이유, 방송인 유병재 등을 언팔(언팔로·SNS에서 친구 관계를 끊는 행위)했다. 이날은 마침 여성을 의제로 한 국내 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가 열린 날이기도 하다.
유아인은 SNS에서 페미니스트들과 설전을 벌인 이른바 ‘애호박 게이트’로, 아이유는 롤리타 콤플렉스(Lolita Complex·어린 여자아이에게 성적인 감정을 품는 것)를 콘셉트로 한 앨범 이미지 때문에 여성들이 대거 등을 돌렸던 바 있다. 유병재는 자신의 스탠딩 코미디 쇼에서 페미니즘을 희화화한 발언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즉, 이들 모두 페미니스트와 대척점에 있는 연예인들이라는 것.
이미 설현은 지난 4월 잡지 ‘보그’ 인터뷰에서 “여성에 관한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생겼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설현의 ‘페미니즘’ 행보가 실제로 드러나면서 남성 팬들은 “남성을 상대로 성 상품화를 하면서 남성을 적으로 돌리나”라며 반발했다. 반면 여성 팬들은 “설현의 용기 있는 행보를 지지한다”며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수지와 설현의 공개적인 페미니즘 행보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는 데에는 앞서 다른 걸그룹의 사례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레드벨벳의 아이린의 경우는 방송에서 ‘82년생 김지영’ 책을 읽었다고 밝힌 뒤 남성 팬들이 사진을 불태우거나 훼손하고 이를 온라인 커뮤니티에 앞다퉈 인증했다. “감히 아이돌 주제에 팬을 배신하고 페미니스트인 척을 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소녀시대 수영 역시 소설 속 ‘김지영’과 공감대를 밝혔다는 이유로 곤욕을 치러야 했다.
걸그룹 에이핑크의 손나은은 ‘소녀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페미니즘 문구가 새겨진 폰케이스 사진으로 남성 팬들에게 욕설과 비난을 들었다. 사진=손나은 인스타그램
에이핑크 손나은의 경우는 이보다 더 심각했다. ‘Girls Can Do Anything(소녀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라는 문구가 적힌 핸드폰 케이스를 들고 있었기 때문에 ‘골빈 X’이라는 욕을 들어야 했다. 결국 욕설과 비난에 손나은은 이 핸드폰 케이스가 찍힌 사진을 인스타그램에서 삭제했다.
이런 가운데 걸그룹 멤버들이 직접 비난과 욕설을 감수하면서 페미니즘 행보를 보이는 데에 업계 역시 주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와 관련 한 연예기획사 홍보팀장은 “시대의 흐름”이라고 짧게 설명했다.
그는 “단순히 남성 팬들에게 ‘성 상품화’로 어필해 인기 몰이를 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한다. 걸그룹은 여성 팬들에게도 닮고 싶고, 애정을 주고 싶은 우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 사회가 원하는 ‘여성상’으로는 한정된 활동밖에 할 수 없다. 페미니즘은 세계적인 추세고, 시대가 변하는 만큼 아이돌도 변해야 한다. 그걸 따라가지 못하면 일본처럼 도태될 뿐”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걸그룹처럼 보이그룹 역시 과거와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까지 큰 문제로 대두되지 않았던 보이그룹 멤버들의 성차별적인 발언이나 ‘여혐(여성 혐오)’ 성향의 유튜브 채널 구독 등 사생활까지 검열 받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 지적이 이어지면서 논란의 멤버들은 즉각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데이트 폭력’ 논란이 불거졌던 유투버 ‘보겸’의 팬이라고 밝혀졌던 윤두준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해명글을 올렸다. 사진=윤두준 인스타그램
이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각 그룹의 팬덤이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른 사람의 방송을 보고 팬이라고 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라며 해명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이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윤두준이 “유튜브 영상을 몇 번 본 게 전부이며 최근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무슨 걱정을 하시는지, 어떤 점에 대해 염려하시는지 잘 알고 있다. 앞으로 더 신중하겠다”며 해명 글을 올렸다.
니엘 역시 “당시 논란이 된 부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지만 오늘을 계기로 자세히 파악하게 됐고, 팬 여러분들께서 걱정하시지 않도록 앞으로 모든 일에 좀 더 신중하고 조심하겠다”는 사과글을 올렸다.
이에 대해 앞선 연예계 관계자는 “이전에는 남자 아이돌들이 비뚤어진 여성관을 대놓고 얘기해도 ‘그게 뭐?’라는 태도였다면, 지금은 비판이 이어지고 이에 재깍 반응해야 한다”라며 “더 이상 팬덤도 이를 실수라고 덮어주지 않는 분위기고, 설사 팬덤은 받아주더라도 여성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찍힌 남자 연예인이 롱런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그는 이어 “어떤 때에도 사회가 요구하는 아이돌 상이 있었고 그 흐름을 빨리 따라 가야 도태되지 않는다. 지금 변화하는 아이돌의 모습이 계속해서 논란에 부딪치는 것도 사회가 요구하는 아이돌 상이 바뀌는 과도기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