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밀리 로맨스는 다양한 가족 대행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홈페이지 캡처.
도쿄에 사는 60대 회사원 니시다 가즈시게 씨는 2년 전부터 가족 대여 서비스를 이용해오고 있다. 아내와는 사별했고, 딸은 아내가 세상을 떠나기 6개월 전 말다툼 끝에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저는 제가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결국 혼자 남겨지면 큰 외로움이 밀려왔죠.” 니시다 씨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물론 그는 회사 영업부에 매일 출근하고, 같이 술 한 잔을 하거나 골프를 치러갈 친구도 있다. 하지만 밤이 되면 그는 완전히 혼자였다. 특히 “집에 있으면 고독함을 지울 수 없어 아내와 딸을 대여하기로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니시다 씨는 가족 렌털업체인 ‘패밀리 로맨스’에 연락해 저녁식사를 함께 할 대여 아내와 딸을 신청했다. 주문서에 그가 원하는 딸의 나이와 아내의 체격 등을 작성하는 식이었다. 첫 번째 만남은 카페에서 이뤄졌다. 가격은 3시간에 4만 엔(약 40만 원). 대여 아내의 첫인상은 평범한 중년여성처럼 보였고, 대여 딸은 실제 딸보다 세련된 모습이었다.
대여 아내는 ‘자신과 대여 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니시다 씨에게 상세히 물어왔다. 니시다 씨는 사별한 아내의 헤어스타일과 딸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갈비뼈를 찌르는 버릇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자 그녀들은 연기를 시작했다. 대여 아내는 진짜 아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를 ‘가즈 씨’라고 불렀으며, 대여 딸은 장난스럽게 그의 갈비뼈를 찔렀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틀림없이 그들을 진짜 가족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 후에도 니시다 씨는 정기적으로 서비스를 이용했다. 어떤 날은 대여 아내와 딸이 집으로 찾아오는 일도 있었다. 그가 회사를 마치고 돌아오면, 대여 아내와 딸은 “안녕히 다녀오셨어요”라고 웃어줬다. 이에 니시다 씨는 “집 안에 불이 켜져 있고, 집은 따뜻했다. 그건 정말 기분이 좋았다”고 회상했다.
셋은 점차 스스럼없이 지내게 됐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니시다 씨는 진짜 딸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어떻게 말다툼을 했으며, 연락이 왜 끊기게 됐는지 숨김없이 말했다. 그러자, 대여 딸은 “딸이 사과하는 것을 니시다 씨가 어렵게 만들었으며, 지금 딸은 당신이 연락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 그는 조언을 받아들여 딸에게 먼저 연락했다. 대여 딸이 진짜 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뉴요커’지는 가족 대여 서비스를 신청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의 사연도 소개했다. 치과위생사 레이코 씨는 싱글맘으로서 딸 마나를 키우고 있다. 그런데 9년 전, 마나가 10살 때 아빠가 없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고 등교를 거부한 일이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레이코 씨는 딸을 위해 ‘대여 아빠’를 신청하게 됐다고 한다. 레이코 씨는 ‘이상적인 아버지’라는 조건으로 대여 아버지를 찾았고, 가장 괜찮다고 생각한 남성에게 10년 가까이 역할 대행을 맡겨오고 있다.
대여 아빠가 레이코 씨 집을 방문하는 횟수는 한 달에 두 번. 각각 4~8시간 정도로, 적어도 한 달에 20만~40만 원의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이를 위해 레이코 씨는 “절약하며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또 “마나의 생일이나 학교행사, 디즈니랜드나 인근 온천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갈 때도 대여 아빠를 예약했다”며 “마나가 대여 아빠와 만나면서 보통의 여자아이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만족해했다.
때때로 “왜 아빠는 밤이 되면 돌아가냐”는 딸의 물음에, 레이코 씨는 “아빠에겐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며 얼버무렸다. ‘뉴요커’지가 “언젠가 딸에게 진실을 밝힐 예정인가”를 묻자, 레이코 씨의 눈은 눈물로 가득 찼다. “절대로 딸에게는 비밀로 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어 “딸이 간혹 ‘아빠와 다시 결혼하면 좋을 텐데’라고 말하기도 한다. 제한된 시간이지만, 솔직히 그가 우리를 보러 올 때 나 역시 행복하다”고 털어놨다.
미국의 작가 엘리프 바투먼 씨도 일본을 방문했다가 가족 대여 서비스를 경험한 이야기를 들러줬다. 그는 ‘가족 대여가 과연 어떤 것인지’ 체험하기 위해 어머니를 대여했다고 한다. 어머니와의 사이에 통역을 대동하는 것도 부자연스러운 일이라, 원하는 조건에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선택했다. 카페에서 처음 만난 대여 어머니는 자그마한 중년여성이었다. 두 사람은 ‘바투먼이 어릴 때 어머니가 사정상 일본으로 이사했고, 둘이 만나는 건 무척 오랜만’이라는 설정 하에 역할 연기를 했다.
바투먼 씨는 “대여 어머니가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구나. 정말 길었지’라며 따뜻한 어조로 말했을 때 감정의 흔들림을 느꼈다”면서 “아버지와 함께 살 때, 이혼 후 이야기를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슬픔이 감돌았고 나는 진짜 어머니를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더욱이 “‘내 딸과 함께 있어주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는 대여 어머니를 보며 무의식중에 안아버리고 말았다”고 전했다.
대여 가족 서비스 ‘패밀리 로맨스’를 창업한 것은 이시이 유이치 씨다. 과거엔 모델과 배우로 활동했으며 양로원에서 간호사로도 일한 이색 경력의 소유자로 알려졌다. 2009년 창업해 현재는 프리랜서 배우를 포함 100명 이상의 종업원이 그의 회사에 소속돼 있다.
서비스 종류는 결혼식 하객이 부족한 사람들을 위한 친척 대행, 혹여 아이가 놀림을 당할까봐 살이 찐 엄마 대신 학교행사에 나가는 엄마 대행 등등 다양하다. 또 결혼에 집착하는 부모를 둔 싱글 여성들은 종종 가짜 남자친구나 약혼자를 대여하기도 한다. 이시이 씨에 따르면 일 년에 두세 번 정도는 완벽한 가짜 결혼식을 꾸민다. 어떨 땐 신부가 진짜 직장동료, 친구, 가족들을 초대하기도 한단다.
다만 문제는 ‘고객이 원하는 이상적인 가족’을 연기하다 보니, 간혹 고객이 직원(대여 가족)에게 구애하는 일이 벌어진다. 특히 대여 남편의 경우 여성 고객의 30~40%가 결국 결혼을 제안한다. 이시이 씨는 “이렇게 의존성이 높아지면 만나는 횟수를 줄이거나 강제로 계약 해지하는 일도 있다”고 전했다.
한편 바투먼 씨는 해외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대여 가족 서비스가 유독 일본에서만 확산되는 이유가 전통에 있을지 모른다고 분석했다. 그는 “본래 일본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가족의 개념과는 달리 혈연에 집착하진 않는다. ‘이에(家)’를 존속시키는 데 무게를 더 두는 가치관 때문에 굳이 혈연관계가 아니어도 양자로 들여 가문을 잇게 하는 전통이 있음”을 지적했다.
또한 바투먼 씨는 대여 가족 서비스를 체험한 뒤 “가족애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가족이라는 이유로 무상으로 일하도록 강요하는 것보다 정당한 보수를 받고 가족으로서의 사랑을 주겠다는 쪽의 견해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됐다”고 기술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