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필상 교수 | ||
문제는 이들이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벌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근본적인 정치개혁을 서두르고 총선에서 국민들의 심판을 겸허히 받아야 한다. 그런데 정치권의 행태는 딴판이다.
아예 국민들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이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진흙탕 싸움뿐이다. 급기야 대선자금에 대한 청문회까지 개최하기로 하고 사생결단의 투지를 불태우고 있다.
4월 총선까지 파탄을 맞고 있는 민생은 팽개친 채 정치싸움만 계속할 것 같다. 이 경우 선거는 다시 지역주의, 이념분열, 세대갈등 등에 의해 만신창이가 되고 돈과 조직이 승리를 이끄는 과거회귀로 끝날 수 있다. 그렇다면 정치부패 때문에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국민들은 희망을 잃고 두 번 죽는 것이 된다.
국회정치개혁 특위는 놀랄 정도의 내용들을 내놓고 있다. 주요합의 내용에 따르면 정치자금의 수입과 지출에 대해 내역을 투명하게 밝히고 기부자의 명단도 공개한다. 또 기업의 후원금을 폐지하고 소규모 개인후원만 허용한다. 더 나아가 지구당을 폐지하고 금품이나 향응제공을 금지한다.
이렇게 되면 과연 깨끗한 정치가 이루어질 것인가? 특위의 정치개혁안은 과거를 반성하는 진심보다는 들끓는 여론의 소나기를 일단 피해보자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국회의원 수의 결정이나 선거구 획정에서 각 당이 당리당략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정치싸움만 벌이다가 불법비리는 다시 묻히고 정치개혁법안은 겉치레가 될 가능성이 크다.
설령 개혁적인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다 할지라도 정치의 근본적인 변화는 담보되지 않는다. 아무리 법이 있어도 권력을 손에 쥐는 한 밀실에서 이뤄지는 불법음성 거래는 막을 수 없다. 정치자금 수수를 보면 사과상자, 쇼핑백, 차떼기, 책떼기 등 날로 새로운 방법이 나오고 있다.
최근 민생은 폭발직전이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2.9%에 달했으나 일자리는 반대로 3만 개나 줄었다. 마이너스 고용 성장이라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면서 실업현상이 악화되고 있다. 더욱이 가계부채와 신용불량으로 저소득층은 사실상 한정치산자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물가가 서민들의 가계를 압박하고 있다. 지난 1월 중 생활 물가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3%나 올랐다. 식료품 가격, 공공요금, 학원비, 등록금, 주택관리비, 유가 등 기초 생활비들이 물가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실업과 부채로 생활이 극도로 어려워진 서민들에게 생활 물가의 상승은 병약한 환자의 목을 죄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볼 때 정치인들은 국민 앞에 모두 죄인들이다. 뼈를 깎는 반성과 함께 새로운 정치판을 만들기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용단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절실한 것이 국민들의 유권자 의식이다. 정치가 낙후한 것에 대해 국민들은 자업자득으로 생각해야 한다.
돈 주면 받고 혈 연, 학연, 지연에 이끌려 결국 부패와 비리가 만연한 것 아닌가? 정치낙후보다 더 우려되는 것이 정치 허무주의다. 정치를 불신하고 등을 돌릴 경우 정치인들은 불법비리는 감추고 정치부패를 심화시킨다. 눈을 부릅뜨고 불법비리를 밝히고 선거에 참여하여 유권자 혁명을 이루어내는 것이 국민의 도리다.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