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당선이 확정된 후 지지자들의 손을 잡고 감사인사를 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대표적인 문 대통령 팬클럽인 ‘문팬’의 회원 수는 대선 기간 1만 5000명 수준이었으나 현재는 2만 4000여 명이다. 정부 여당으로서는 신바람 날 만한 일이지만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일부 지지자들의 성향이 점점 더 과격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나치면 홍위병으로 변질되고 향후 중도층 확장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문 대통령 ‘복심’으로 통하는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지난 1월 발간한 자신의 책에서 일부 극성 지지자들에 대해 “미안한 얘기이지만 한편으론 큰 부담이었다”고 밝혔다.
양 전 비서관은 “선거 상황에서 강력한 결집력을 지닌 온라인 지지자들은 문 대통령에게 무척 고마운 분들이었지만 그 가운데 극히 일부는 인터넷 공간에서 지지 성향이 다른 누리꾼들에게 배타적 폐쇄성을 드러내기도 했다”며 “결국 당내 경선 기간에 다른 후보들이 문 후보를 비판하는 소재가 됐다”고 했다.
과격 지지자들의 행태는 급기야 정치 테러로까지 이어졌다. 단식 투쟁 중이었던 김성태 자유한국당(한국당) 원내대표를 폭행한 혐의로 구속된 김 아무개 씨는 자신을 ‘문 대통령 지지자’라고 밝혔다. 한국당은 논평을 통해 “김 씨는 전형적인 문 대통령 지지자의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강효상 한국당 의원은 “그동안 작은 이슈들조차 일일이 언급하며 챙기던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정작 이번 정치 테러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면서 “국회에서 제1야당 대표까지 폭행당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함으로써 공포정치를 조장하려는 것인가”라고 반발했다.
한국당 전직 의원은 “물론 문 대통령의 잘못은 아니지만 가해자가 자신의 지지자로 밝혀진 만큼 도의적으로 유감 표명 정도는 했어야 한다”면서 “방치하면 앞으로도 문 대통령 지지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정치테러가 있을 수 있는 것 아니냐. 지난 대선 때 지지자들의 악플을 ‘양념’이라고 옹호했던 잘못된 인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 지지자를 자처하는 인사의 정치 테러가 재차 발생할 경우에는 비난의 화살이 청와대로 쏠릴 가능성도 있다.
과격 지지자들의 이른바 문자폭탄은 더 강력해졌다. 이들은 SNS나 팬카페 게시판 등에 특정 정치인 전화번호를 게시하고 문자폭탄을 독려하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야권 의원 상당수가 문자폭탄에 시달려 휴대전화 번호까지 바꿨을 정도다.
야권에선 “국회의원 개인 전화번호를 공개하고 수백 명이 동시에 비방 문자를 보내는 것은 여론 테러”라고 반발했지만 친문(친문재인) 인사인 손혜원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의원은 오히려 “문자폭탄의 어감이 부정적이라며 ‘문자행동’이라고 바꿔 부르자”는 제안까지 했다.
손 의원은 SNS에서도 “댓글로 사람이 죽지는 않는다”면서 “본인이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지 못할 일들을 언론을 향해 본인이 계속 외치니 문자를 보낸 당사자들은 더 과격해진다”고 썼다.
한 한국당 의원실 관계자는 “민주당 측에서는 문자폭탄도 여론이라고 말하지만 몇몇 번호를 차단하니 문자폭탄 개수가 확 줄었다”면서 “문자폭탄은 일반 국민들이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일부 지지자들이 반복적으로 보내는 것이라 여론이라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친문 인사들이 옹호한 문자폭탄은 최근 다른 정당 인사들뿐만 아니라 같은 당 친문 인사들마저 공격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친문 인사인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드루킹 특검에 합의했다가 문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문자폭탄을 맞았다. 한동안 휴대폰을 켜놓으면 배터리가 방전될 정도로 문자 공세에 시달렸다고 한다. 홍 원내대표 의원 사무실에도 항의 전화가 쇄도했다.
역시 친문으로 분류되는 한 전직 민주당 의원도 경기도지사 경선이 끝난 후 “우리는 원팀”이라며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SNS 글을 올렸다가 악플 세례를 받았다.
일부 문 대통령 지지자들은 매주 토요일 광화문에서 혜경궁 김씨 수사촉구집회도 열고 있다. 대선 경선 과정에서 문 대통령과 대립했던 이재명 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를 겨냥한 것이다. 이들은 ‘이 후보가 당선되면 문 대통령을 향해 칼을 겨눌 것’이라며 ‘차라리 다른 당 인사가 당선되는 것이 낫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문 대통령 지지자 대부분이 민주당 당원인 것을 감안하면 해당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과격 지지자들은 언론의 정당한 비판에도 재갈을 물리려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한겨레, 경향신문 등 진보 성향 언론들도 예외가 아니다. 한겨레는 지난해 영부인인 김정숙 여사를 김정숙 ‘씨’라고 호칭했다가 문 대통령 지지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한겨레는 1988년 창간 한 이후 대통령 부인에 대해 ‘~씨’라고 표기해왔다. 그러나 지지자들의 항의가 계속되자 한겨레는 대통령 부인 이름 뒤에 붙이는 존칭의 표기를 ‘씨’에서 ‘여사’로 변경하기로 했다. 한 진보매체 기자는 문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시달리다 자신의 SNS에 ‘덤벼라 문빠(문 대통령 지지자를 비하하는 단어)들’이라는 글을 남겨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 언론사 기자는 “기사의 사실관계가 틀렸다면 비판 받아도 할 말이 없지만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실을 기사화해도 무조건 비판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문팬 관계자는 “극히 일부 지지자들의 사례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 관계자는 “어떤 프레임을 가지고 있는 기사는 쓰지 마시라”며 “더 할 말이 없다”고 했다.
한편 문팬은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민주당의 (정치인)자산을 소중히 생각하며 단결해야 한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문팬은 입장문에서 ‘우리 팬클럽 내에서 민주당의 자산을 갉아먹는 언행을 그만두었으면 한다’면서 ‘계속 분열을 야기하는 글은 바로 삭제하겠다’고 경고했다. 대선 경선이 끝난 이후에도 일부 지지자들이 경쟁 후보였던 다른 민주당 인사들에 대한 비판을 계속하자 내린 조치다.
앞서의 한국당 전직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 때 수많은 지지자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시위를 했지만 여론에 변화를 주지 못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그들이 박 전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지지하고 과격 행동을 일삼았기 때문”이라며 “일부 문 대통령 지지자들을 보면 젊은 박사모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문 대통령 지지자들이 그들만의 세계에 갇혀 버린다면 이질감을 느낀 일반 국민들은 등을 돌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