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별내 신도시 ‘크린넷’ 사망 사건 현장.
지난 4월 24일 오후 3시 25분경, 남양주시 별내 신도시 인근에서 크린넷을 점검하던 T 사 소속 조 아무개 씨(39)가 기계 안쪽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조대는 크린넷에서 약 80m 지점에서 조 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크린넷은 쓰레기를 지상의 투입구에 넣으면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여 배관을 통해 집하장으로 이동시키는 시스템이다. 경찰에 따르면 조 씨는 공기가 새는 원인 파악을 위해 지하관 쪽으로 몸을 숙이는 사이, 크린넷이 작동하면서 참사가 일어났다.
당시 남양주시는 크린넷 사용을 전면 중단하고, 사고원인 조사를 위해 부시장을 단장으로 하는 대책본부를 설치했다. 사고대책본부는 공무원과 민간전문가 등이 참여한 사고조사반과 수습대책반으로 구성됐다.
경찰 역시 수사에 나선 뒤 “사망사고가 기계적 결함이나 오작동 때문이 아니다”라고 발표했다. 투입구 내부의 부품 수리 과정에서 내부 관로의 중간 문들을 전부 열어뒀는데, 관제실 직원이 중간 문들의 개폐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흡입 테스트를 하는 바람에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남양주시의 입장도 경찰과 다르지 않았다. 남양주시 관계자는 “사고 직후 용역을 맡긴 결과 기계적인 결함은 없었다. 사고는 100리터(ℓ) 쓰레기 봉투가 들어가는 크린넷 투입구에서 발생했다. 100ℓ 투입구의 크기를 줄여 50ℓ로 줄여 사용하도록 할 예정이다”고 답변했다. 남양주시는 6월 1일, 크린넷을 재가동할 예정이다.
남양주시 관계자는 사고 직후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측에 크린넷에 대한 외부용역을 의뢰했으며, 4월 24일 ‘별내 크린넷 투입구 긴급 안전진단 결과보고회’에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시스템이 안전상으로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고 강조했다.
남양주 별내 신도시 ‘크린넷’ 사망 사건 현장. 100리터 투입구(좌)와 작업자가 신었던 신발
하지만 ‘일요신문’이 별내 신도시의 사고 현장을 찾았을땐 주민들의 불안감은 여전해 보였다. 작업자가 빨려 들어간 크린넷 투입구 앞에는 여전히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었고, 시민들이 작업자를 위해 놓아둔 조화는 빗물에 쓸려있는 상태였다.
사고현장 인근에서 만난 이 아무개 씨(여․30) 씨는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안전하다고 생각했지만 크린넷은 위험한 시스템이 맞다”며 “안 그래도 고장률이 높았는데 시스템을 터무니없이 허술하게 만든 느낌이 든다. 혹시 몰라서 아이들이 크린넷 근처에 가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지역 주민들은 아이들의 ‘사고 위험’에 대한 걱정이 상당했다. 이에 대해 남양주시 관계자는 “크린넷은 별내 지역만 사용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40개 택지지구에서 쓰고 있고, 사망 사고는 수리 도중에 발생했다. 높이 1.2m 지점에 투입구가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접근할 수 없는 구조다”고 말했다.
하지만 취재 결과, 크린넷 투입구들은 대부분 아이들의 손에 닿을만한 위치에 있었다. 심지어 별내 지역 대부분의 아파트들이 크린넷 주변을 통제하지 않고 있었다. 크린넷 앞에서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의 접근이 자유로워 보였다.
별내 신도시 인근의 아파트에 설치된 크린넷.
현재 별내 신도시 일대의 크린넷의 쓰레기 투입구는 보통 3개로 구성돼 있다. 음식물과 일반 쓰레기 처리를 위한 20ℓ 투입구, 일반 대형 쓰레기 처리를 위한 100ℓ 투입구다.
주민들이 각각의 투입구 위쪽에 카드를 대면 투입구가 열린다. 투입구 안쪽으로 쓰레기를 넣으면 뚜껑이 닫히고 ‘쓰윽’하는 소리가 난다. 크린넷이 진공청소기처럼 쓰레기를 빨아들이는 소리다. 쓰레기는 지하에 연결된 수거 관을 통해 순식간에 집하장으로 이동된다.
주민들은 100ℓ 투입구의 크기를 50ℓ로 줄인 뒤에 재가동한다는 남양주시의 입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사고현장 인근에서 만난 박 아무개 씨(여․37)는 “쓰레기 투입구의 크기를 줄인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크기가 작아도 아이들의 팔이 들어갈 수도 있다”며 “경비 아저씨들은 20ℓ 투입구에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껴서 힘들다면서 100ℓ 투입구를 이용하라고 한다. 50ℓ로 줄여도 여전히 위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크린넷에 대한 두려움은 강한 흡입력에 있다. 크린넷은 체중 70-80kg에 달하는 성인 남성을 쓰레기 투입구 안쪽으로 집어삼킬 수 있다. 이번 사망사고 이전인 2016년경 파주 운정신도시 주민들도 아찔한 사고를 경험했다.
크린넷은 음식물과 일반 쓰레기 처리를 위한 20리터(ℓ) 투입구(왼쪽부터), 일반 대형 쓰레기 처리를 위한 100리터(ℓ) 투입구로 구성된다.
운정 신도시 가람마을의 김문규 입주자 대표는 “2년 전 관리실 직원이 크린넷 문이 제대로 열리는지 확인하기 위해 투입구 앞에 서 있었다”며 “크린넷 속의 바람이 직원을 갑자기 잡아 당기면서 안경이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직원이 두 손으로 크린넷 투입구를 꽉 잡고 있었다. ‘작동중지’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는데 흡인력 때문에 말을 못 이었다. 전원이 자동으로 꺼져서 가까스로 살아 남았다”고 회고했다.
이에 별내 주민 김 아무개 씨(여․59)는 “구멍 크기를 줄여도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다. 가뜩이나 고장이 많이 나는데 뚜껑이 닫히지 않으면, 언제든지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뜻 아닌가”라고 반문하면서 “사람이 또 죽을 수 있는데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않고 재가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시민단체도 남양주시의 대응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김선홍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환경운동본부장은 “남양주시가 말이 안되는 행동을 하고 있다”며 “실질적인 사고 원인은 따지지 않고 전혀 위험하지 않은 시설로 무마하고 있다. 크린넷은 지속적으로 위험한 환경유해시설이다. 일부 직원의 작동 미숙으로 치부하는 것은 사건을 축소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민들 사이에서 남양주시의 안일한 대응이 도마에 오르고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남양주시 관계자는 원칙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근본적인 대책없이 크린넷을 재가동하면 사고가 또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에 남양주시 관계자는 “그런 식으로 따지면 어떤 시설물이나 고의로 목적과 다른 방법으로 쓰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도 어린아이가 운전하면 위험한 물건이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자동차를 이용할 확률은 미미하고 작다”고 해명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