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필상 | ||
성장과 분배를 놓고 우왕좌왕하다가 경제동력을 꺼뜨리고 국민들을 실업과 부채의 수렁에 밀어 넣었다. 더욱이 부동산 투기와 물가 상승까지 허용하여 삶의 기반마저 흔들어 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이헌재 부총리가 참여정부 2기 경제수장으로 들어섰다. 이헌재 부총리는 국민의 정부 때 금융감독위원장과 재정경제부 장관을 연이어 맡으면서 IMF 위기를 극복한 구조조정의 전도사 역할을 했다. 실로 과감한 기획력과 추진력으로 국가경제를 부도위기에서 구출한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이헌재 부총리는 무모한 정리해고와 공적자금 투입으로 민생을 고통의 함정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국민의 정부는 외환위기가 닥치자 IMF의 논리에 따라 무자비한 구조개혁을 실시했다. 부실금융기관 및 기업에 대한 살생부를 작성하여 대대적인 퇴출과 합병을 시도했다. 이렇게 되자 자금 지원만 하면 회생할 수 있는 수없이 많은 기업들이 희생을 당했다.
또 국민의 정부는 외국자본유치와 기업들의 자생력 회복을 목적으로 콜금리를 10%수준에서 30% 이상으로 올리고 긴축정책을 강행했다.
이 정책은 외환위기로 부도위험을 맞고 있었던 대다수 기업들에게 사약이나 다름없었다. 자금이 필요한 기업들을 사채시장으로 내몰며 70% 이상의 실질금리를 지급하게 만들어 결국 죽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렇게 되자 산업 활동이 마비되다시피 하고 2백만 명에 이르는 실업자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후 종합주가지수가 270선까지 무너졌다. 정부는 여기서 외국자본유치를 위해 경제를 완전 개방하여 삼성전자, 국민은행, 포스코 등 주요기업의 소유권은 물론 증권시장의 주도권까지 외국자본에 넘겨주는 우를 범했다. 국민의 정부 경제정책 실패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경기를 부양시킨다는 이유로 신용카드의 무제한 발급을 허용하고 가계대출을 자유화시켰다.
이렇게 되자 실업으로 경제능력을 상실한 서민들은 고리대금업의 덫에 걸려 가계파탄에 이르고 말았다.
이제 국민의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업보를 안고 이헌재 경제팀은 경제를 살려야 하는 책임을 맡았다.
그러나 어떻게 된 것인지 취임하자마자 불안하다. 실업을 해결한다고 5년간 연 경제성장률 5%와 일자리 5백만 개 창출을 공언하고 있다. 2002년과 2003년에 경제성장률은 6.3%와 2.9%이었다. 그러나 일자리는 각각 3만 개와 4만 개가 줄었다. 마이너스 고용성장이라는 기현상이 이미 구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처구니없는 정책을 내놓은 셈이다.
이헌재 부총리는 자신이 씨를 뿌린 우리 경제의 붕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카드 위기 해결, 정경유착 비리 척결, 신산업 개발과 성장 동력 창출, 노사정 대타협 등 숱한 과제를 국민과 함께 정도로 푸는 지혜와 용기를 가져야 한다. 1930년대 미국경제가 대공황을 겪을 때 미국 정부는 뉴딜정책을 펴 경제를 죽음에서 살린 일이 있다.
이헌재 경제팀은 미래 산업을 주축으로 하는 21세기형 한국판 뉴딜정책을 한시바삐 내놓고 강력히 추진하는 새모습을 함께 보여야 한다.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