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필상 | ||
IMF 위기 이후 우리 사회는 경제적으로 심각한 양극화 현상이 나타났다. 오로지 강자만이 살 수 있다는 신자유논리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면서 50대 이상은 사실상 경제적 사형선고라는 실업을 강요당했다. 6·25라는 민족상잔의 비극 속에서 풀뿌리로 연명하며 살아남은 50대 이상의 계층은 60년대 이후 경제성장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수행하면서 피, 땀, 눈물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후세들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모든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세대다. 이들에게 경제활동을 정지시킨 것은 현 시대의 죄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들에게 이제 투표까지 할 필요 없다고 내모는 것은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분노를 자아낼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선거법의 획기적인 개정으로 금권선거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실로 우리나라 정치발전에 획을 긋는 일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정치는 불법투기사업의 성격을 띠었다. 각 정당은 선거 때마다 대규모 선거자금을 동원하여 유권자들에게 뿌렸다. 이렇게 하여 당선이 되면 갖가지 이권에 개입하여 정경유착 비리를 저지르며 돈을 긁어모았다. 이번 선거가 깨끗한 선거로 끝날 경우 정치와 경제는 타락의 덫을 벗고 새로운 도약을 시도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분열과 갈등이 확산되면 이는 허사로 끝난다.
한편 또다른 문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정부의 선심성 정책 남발이다. 최근 정부가 제시한 정책을 보면 신규고용 1인당 1백만원 법인세 감면, 중소기업 1만 개 창업, 근로자 정년연장 때 월 30만원 지원 등 선심성 정책 일색이다. 지금까지 정부 각 부처가 발표한 일자리 수를 합치면 재경부 30만 개, 산자부 11만 개 등 모두 1백80만 개나 된다. 실업자의 두 배가 넘는 숫자다. 이는 결국 정부가 선거를 오염시키는 행위로서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선거가 끝난 후 이러한 공약 남발은 정책의 혼란을 유발하고 모든 짐을 다시 국민에게 전가시킨다.
이번 선거는 경제가 최악의 국면을 맞은 상황에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대한 선거이다. 그러나 선거 후가 두렵다. 깨끗하고 공정한 선거는 물론 선거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며 국민화합과 경제 살리기에 모두가 노력하는 지혜가 절실하다. 그동안 정치낙후와 경제 부실은 결국 국민들의 자업자득이라고 볼 수 있다. 유권자들은 나라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고 성숙한 정치문화를 새로 열고 경제를 살리는 데 다함께 마음을 모아야 한다.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