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단둥에서 바라본 북한 신의주 시내 모습.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국제적 대북제재와 압박이 최고조에 올랐던 올 연초 북한 내 대부분 품목들의 물가는 급속도로 치솟았다. 무엇보다 중국의 대북제재 동참이 결정적이었다. 평균적으론 10~20% 인상으로 추정되지만, 기름과 쌀 등 전략물자는 그 상승폭이 매우 컸다. 북한 내부에선 이 시기 ‘빗자루 가격까지 올랐다’는 씁쓸한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주민들이 느끼는 압박은 상당했다. ‘일요신문’은 이미 지난 3월 중국 단둥 현지 취재(1352호)를 통해 이에 대한 당시 상황을 자세히 조명한 바 있다.
필자는 최근 북한 주요 품목에 대한 시세 자료를 입수했다. 이 자료는 북한 원화 단위의 자료이기 때문에 다소 주의할 필요가 있다. 최근 북한 시장에서 1달러는 평균적으로 북한 돈 8500원 안팎으로 거래되고 있지만, 요즘 이마저도 시간과 지역에 따라 변동 폭이 워낙 크기 때문에 정확한 환산이 쉽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참고로 북한의 공식 환율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실제 거래되는 것은 그때그때 시장 환율에 따르기 때문이다.
일단 가장 중요한 쌀(흰쌀) 시세는 한때 1kg당 기존 북한 돈 5000원(앞서의 최근 북한 내 평균 시장 거래 환율로 환산하면 약 0.58달러, 한국 돈 620원 수준)에서 북한 돈 6500~7500원까지 치솟던 것이 북중정상회담 이후 최근 다시 5000원 이하로 안정됐다. 평양에선 4500원까지 시세가 하락해 거래가 되고 있다.
북한의 주요 식량인 옥수수 가격도 마찬가지다. 1kg당 2500원대를 유지하던 옥수수는 올 초 3000~3400원까지 시세가 급등했지만, 최근엔 2800~3200원 수준으로 하락했다. 쌀만큼의 하락폭은 아니지만, 옥수수 시세 역시 하향세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기름 또한 최근 안정세로 돌아섰다. 우선 휘발유다. 1kg(1.4L 정도)당 북한 돈 2만 원 정도를 유지하던 휘발유는 올 초 2만 5000원~2만 7000원까지 급등했지만, 최근 다시 2만 원 미만으로 떨어졌다. 디젤유는 기존 1kg당 북한 돈 1만 3000원을 유지하던 것이 휘발유보다 급등세가 커 올 초 2만 원~2만 2000원까지 뛰었는데 최근엔 다시 과거 시세로 돌아왔다고 한다.
반대로 USB와 4G칩 등 메모리 기억장치, 태양광 패널(12v용량 1세트), 가정용변압기 등 공산품 및 사치품들은 오히려 최근 시세가 약간씩 올랐다는 후문이다.
이렇듯 공교롭게도 북한 내에서 최근 공산품들을 제외한 기름과 식량 등 주요 전략물자 품목들은 북중정상회담 이후 물가가 안정세로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5월 7일 북중정상회담 이후 이 같은 북한의 물가 안정세는 급속도로 진행 중이다. 특히 필자는 이러한 현상을 뒷받침할 접경지역에서의 몇 가지 유의미한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열차에 대한 내용이다. 북한과 중국을 오가는 소식통에 따르면, 5월 7일 두 번째 북중정상회담 직후 이전에는 편성되지 않았던 네 기의 화물열차가 북중 접경을 거쳐 북한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는 약 40량 이상의 분량이다. 이뿐만 아니라 비슷한 시기, 북한의 철광과 석탄을 실은 열차 10기(약 100량 분량)가 편성돼 중국으로 들어갔다는 소식도 함께 확보했다. 최소한 석탄으로만 5000톤 이상 중국에 팔린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이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판흔들기’에 나선 가운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 배후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으로 의심하고 있다. 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아직 그 구체적인 내용물과 수량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는 최근 북한의 전략물자 물가가 안정세에 접어든 것과 무관치 않다는 설명이다. 즉 중국의 대북제재 양상이 실제 완화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두 번째로 북중 접경에서 이뤄지는 해상무역에도 변화가 엿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본지가 지난 3월 취재할 당시만 해도 북한 신의주 지역에는 과거와 달리 공식·비공식 해상무역을 꾀하던 50여 척의 배가 그대로 정박돼 있었다. 이는 대북제재 속에서 느슨하게 유지해 온 중국의 해상지역 단속을 강화한 결과였다.
하지만 최근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한동안 정박해 있던 북한 선적들이 다시 활동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정박돼 있는 북한 선적의 수가 확연하게 줄었다는 설명이다. 이 역시 북중정상회담 이후 목격되고 있는 현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7일 이른바 ‘시진핑 배후설’을 제기한 데 이어 22일(현지시각) 기자회견에서도 시진핑 중국 주석을 두고 ‘포커 플레이어’란 표현을 써가며 “김정은이 중국을 두 번째로 방문한 뒤 (대미 및 대남) 태도에 변화가 있었다”고 공개적으로 지적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내가 기분이 좋을 리 있겠느냐”고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미북정상회담의 불확정성까지 논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을 놀리려 한다면 아주 어렵게 될 것”이라는 발언을 내놨다.
물론 최근 북중 접경지대에서 목격되고 있는 이 같은 현상과 북한 전략물자들의 물가 안정화가 곧 중국의 대북 영향력 확대로 확정하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현재 흔들리고 있는 향후 북미정상회담의 실제 성사 여부와 북미 간 기 싸움에 있어서 중국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작용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앞서의 현상은 이를 어느 정도 뒷받침하고 있기도 하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