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 ||
작년 이때만 해도 민주당은 비록 원내 제1당은 아니었지만 정권재창출에 성공한 집권여당으로서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런 ‘여당’이 1년 사이에 의석이 겨우 9석밖에 안되는 ‘`군소정당’으로 전락한 것이다. 당사도 내놓고 길거리에 나앉을 판이 되었을 뿐 아니라 오랫동안 당 살림을 맡아왔던 사무국 직원들의 퇴직금조차 주지 못했다고 한다.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간다’는 속담도 민주당에는 해당되지 않는 모양이다.
우리는 이같이 참담한 민주당의 몰락을 보면서 승리의 열매 속에 패배의 씨앗이 들어 있고 패배 속에서도 승리의 씨앗이 자란다는 세상사의 섭리를 다시 깨닫게 된다. 1984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레이건 후보에게 고배를 마신 민주당의 먼데일 후보는 “모든 승리에는 패배의 씨앗이 들어있고 모든 패배엔 승리의 씨앗이 들어있다”는 말로 실의에 빠진 지지자들을 위로한 적이 있다.
우리는 민주당의 몰락을 보면서 또한 ‘성공자의 위기’를 떠올리게 된다. 성공한 사람이 언제까지나 자신에게 성공을 가져다 준 이념과 제도와 시스템을 고집하다가 실패하는 경우다. 두 차례나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 과거에 집착하며 개혁을 외면하다가 오늘의 몰락을 가져온 것이다. 이러한 ‘성공자의 위기’는 개인은 물론 모든 조직이 안고 있는 패배의 씨앗이다. 특히 자수성가한 인물이나 역경을 이긴 조직에서 더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지난 4·15총선에서의 승자를 굳이 가려내자면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을 손꼽을 수 있다. 열린우리당은 원내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고 민노당은 국회진출이라는 오랜 숙원을 성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이나 민노당 쪽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벌써 노선이나 지분을 둘러싼 힘겨루기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실용과 이념의 우선 순위를 놓고 계파간 줄다리기가 시작되었고 민노당은 대의원 지분을 둘러싼 전농(全農)측의 불만이 제기된 데 이어 대화와 타협으로 보수정당에 옷을 맞추려 한다는 진보진영의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게다가 열린우리당은 민생을 먼저 챙기겠다던 다짐과는 달리 벌써부터 차기대권을 겨냥한 계파간 신경전을 벌이는가 하면 누가 입각하느니, 누가 차기 국무총리에 내정되었느니 하며 김칫국 마시기에 바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래서는 ‘20년 집권의 꿈’도 한낱 남가일몽(南柯一夢)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성공한 사람이나 개인이 깨달아야 할 것은 축배 속에는 언제나 패배의 씨앗이 잠겨 있다는 사실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은 성공한 개인이나 조직 모두에게 여전히 녹슬지 않는 교훈이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