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필상 | ||
지난 17대 총선에 출마한 대학교수는 1백3명에 이르고 이 중 34명이 당선되었다. 이번 총장 회의에서 제시된 결의문은 이것을 막자는 것이었는데 반대에 부딪힌 것이다. 기득권 논리가 이긴 셈이다.
대학교수의 정치참여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현실경험이 연구와 교육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가식적 명분이다. 그동안 출세지향적 행태로 보아 학문의 오염과 자기 변명만 강의실에 불러올 뿐이다. 권력은 마약 같은 것이어서 한번 맛을 보면 다른 일 하기가 어렵다. 그동안 정치적 소모품으로 그렇게 많은 교수들이 희생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줄을 서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대학은 학문을 연구하는 지성의 전당이다. 또 사회 정의를 지키는 양심의 보루이다. 이런 대학이 교수들의 정치와 돈에 오염이 되어 본연의 모습을 잃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교수의 권위는 대단한 것이었다. 4·19 때 학생들이 독재타도를 외치며 교문을 나설 때 다칠 것을 우려하여 교수가 길을 막으면 모두가 방향을 바꿀 정도였다. 교수들이 학생들 대신 거리로 나와 평화시위를 벌이자 온 국민이 힘을 합쳐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기도 했다. 그러던 교수의 모습이 요즈음은 어떤가? 불의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권력의 편에 선다. 진리를 추구하기보다는 지식을 이용해 돈을 취한다. 이제 학생들의 시위를 막으면 권력과 자본의 하수인은 물러가라는 야유가 나온다.
대학교수의 추락은 70년대 초 유신정권 이후 시작되었다. 당시 일부 교수들은 유신헌법을 만들고 독재정권을 합리화하는 이론을 창출했다. 그 대가로 그들은 국회의원, 장·차관 자리를 얻어 권력을 향유했다. 이후 대학은 점차 학생들과 사회로부터 신뢰를 상실하고 등록금 받고 지식을 전달하는 상업적 기능을 하는 기관으로 격하되었다.
원칙적으로 대학교수의 현실참여는 반대할 일이 아니다. 교수의 전문지식이나 소신이 나라발전과 국민안녕에 필요한 것이라면 당연히 참여해야 한다. 관건은 순수성이다. 나라를 위해 희생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라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자신의 영달을 위해 교수직을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교수에게 학문연구와 교육은 기본 사명이다. 학문을 출세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학생들 교육을 정치적 피해물로 만든다면 이는 대학과 국가에 모두 해가 되는 반윤리적 행위다.
교수가 휴직하고 복직한다는 것은 연구와 교육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에 처할 때 한하여야 한다. 교수 자신이 출세하려고 대학 위상을 떨어뜨리고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는 휴직과 복직을 어떻게 허용할 수 있는가? 현행법은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결정은 대학이 하도록 자율권을 줘야 한다. 여기서 교수들은 잘못된 과거에 대해 반성하고 학문적 양심을 되찾는 자정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에게 희망과 믿음을 주는 정신적 보루로서 대학 본연의 위상을 다시 찾아야 한다.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