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핵부산시민연대는 지난 24일 오전 부산시청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고리원전 3·4호기 폐쇄를 촉구했다.
고리원전과 신고리원전이 자리한 기장군 장안읍 일대는 국내 최대의 원전 집결지다. 때문에 부산을 비롯한 동남권 주민들은 경주지진 등 원전사고 유발 가능성이 있는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가슴을 쓸어내린다. 특히 이는 국내 반핵단체들의 주된 활동무대가 부산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원전 관련 비리도 항상 논란이 돼왔다. 비리의 정점에는 ‘원피아’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받는 한수원이 자리한다. 한수원과 협력사, 일부 기관 등의 유착으로 인한 사건은 이루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비일비재하다.
그런 가운데 고리원전 3·4호기에서 또 다른 논란거리가 불거졌다. 바로 고리 3·4호기 격납건물 안쪽에 설치된 철판(라이너플레이트·CLP) 가운데 ‘최소 두께기준’인 5.4㎜보다 얇은 부위가 애초 정부가 발표한 359곳의 12배나 많은 4235곳이라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특히 철판들이 기준 이하가 된 주된 원인이 대부분 노후화 때문이 아니라 시공 당시 용접부위를 과도하게 깎아낸 탓으로 파악됐다. 방사선 누출 방지 용도인 격납건물의 철판이 얇은 게 부실시공 때문이란 사실이 명백하게 확인된 것이다. 게다가 이런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채 30년 가까이나 원전이 가동된 점은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재호 국회의원이 지난 22일 공개한 한국수력원자력의 ‘고리 3·4호기 격납건물 라이너플레이트 점검 현황’ 자료 등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으로 고리 3·4호기 라이너플레이트 가운데 두께기준에 미달하는 부위는 3호기가 2077곳(부식 224, 비부식 1853), 4호기가 2158곳(부식 9, 비부식 2149)에 이른다.
이는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지난해 7월 27일 발표한 것보다 12배가량 많은 수치다. 당시 원안위는 라이너플레이트가 설치된 국내 원전 22기에 대한 건전성 조사를 실시한 뒤 고리 3호기 두께기준 미달 부위는 279곳(부식 208, 비부식 71), 고리 4호기는 80곳(부식 11곳, 비부식 69곳)이라고 밝혔다.
그런 가운데 고리 3호기는 지난해 1월 계획예방정비에 들어가 지난 10일 재가동이 승인됐다. 고리 4호기는 지난해 3월 냉각제 누설이 확인돼 운영이 정지된 이후 계획예방정비에 들어갔다가 4월 12일 재가동 승인을 받았다.
문제는 이런 일련의 과정 중에서 보인 한수원의 행태다. 박재호 의원 측의 자료에 의하면 한수원이 과도한 그라인딩 작업으로 얇아진 부위가 많다는 사실을 인지한 시점은 지난해 6월이다. 하지만 한수원은 이런 사실을 재가동 심사 승인 직전인 4월 10일에야 원안위에 보고했다. 두께기준 미달 부위가 수천 곳에 이른다는 중대한 결함을 10개월이 넘도록 축소·은폐한 것이다.
한수원은 원전 주변지역 주민대표들이 참여하는 ‘고리 원전 안전협의회’에도 4월 18일에야 두께 미달 부위의 정확한 개수를 공지했다. 주민복지를 위한다는 명목의 겉치레 행사를 개최해오면서 정작 주민안전과 직결된 문제점은 알리지 않은 셈이다.
더욱 간과하기 힘든 부분은 한수원이 지난해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공론화위) 개최를 앞두고 이 같은 사실을 숨겼다는 점이다. 공론화위원회 출범시점은 지난해 7월말이다. 한수원은 이에 앞서 지난해 6월 고리 3·4호기의 관련 문제점을 확인했다. 하지만 한수원은 원안위와 지역주민들에게 관련 내용을 수시로 보고·설명하는 게 상식인데도 그러지 않았다. 공론화위 출범을 앞두고 파장을 우려해 관련 내용을 고의로 숨겼다는 의심을 사는 대목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당초 해당 점검이 철판 부식 정도를 확인하는 게 목적이었다. 때문에 철판 두께 미달은 별도로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실을 고의적으로 숨기거나 축소한 것은 아니다”라는 해명도 덧붙였다.
관련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사회가 분개했다. 에너지정의행동 등의 단체로 구성된 탈핵부산시민연대는 24일 오전 부산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이미 지난해 3월 고리 3·4호기 격납건물 내부 철판 부식이 발견되자 두 차례나 긴급 기자회견을 가진 바 있다.
탈핵부산시민연대는 이날 “고리 3·4호기의 격납건물 내부 철판 부식이 문제가 부식이 아니라 ‘부실시공’이고, 얇아진 철판의 부위도 지난해 중간발표 당시보다 12배가 많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고,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고리 3·4호기 격납건물 부실시공을 30년간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노후 핵발전소를 즉각 폐쇄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용성 기자 ilyo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