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 ||
‘진리는 시간의 딸’이라는 금언도 있지만 아무리 엄격한 성문법도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경우는 없다. 법구폐생(法久弊生)이란 말에서 보듯 아무리 좋은 법도 오래되면 폐단이 생기게 마련이다. 최근 몇 년간 우리사회에 호적법과 국가보안법 등의 개폐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도 오래 전에 제정한 이들 법이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법률은 제정되는 그 순간부터 시대변화에 뒤떨어지는 운명을 안고 태어난다. 법률은 언제나 기존질서를 옹호하는 마지막 방파제이기 때문이다. 법률이라는 ‘잣대’가 시대의 변화를 앞질러 가는 일은 거의 없다. 따라서 제정되는 그 시간부터 앞으로 나가는 뱃전에 칼자국을 남기는 각주구검(刻舟求劍)의 운명을 타고 나는 것이 법률의 한계이자 숙명이기도 하다.
법관은 기존사회의 가치체계를 옹호하는 마지막 보루이자 역사의 마지막 단계에서까지 어쩌면 `시대에 뒤떨어진 ‘이념과 가치’의 손을 들어 주어야 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셈이다. 설사 법 조문에 얽매이지 않고 법 정신에 충실한 결정을 내린다 하더라도 그 판결은 어차피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더군다나 법령의 해석이 그 사건에 관하여 하급심을 기속(羈束)하는 대법원의 심판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우리나라의 최고법원인 대법원의 새 대법관에 서열을 뛰어넘어 여성 부장판사가 제청되었다. 이 같은 제청내용을 두고 개혁성과 진보적 성향의 시민단체가 사법부의 인사를 좌지우지했다고 우려하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심지어는 사법부가 위기상황에 빠져들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사표로 항의의 뜻을 표시하는 법관도 나오고 있다. 다른 어느 조직보다도 서열과 직급을 존중하는 사법부에 서열을 뛰어넘어, 그것도 진보적이고 개혁적이라는 여성 부장판사가 대법관에 제청되었으니 그 충격과 반발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마리의 제비가 봄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말도 있듯이 개혁성향의 판사 한 사람이 대법관이 되었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대법원의 판결이 한쪽으로 쏠리거나 편파적이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다만 재판석에서 소수의견으로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의견이 표출될 수는 있을 것이다.
다만 한가지 바라고 싶은 것은 앞으로도 신임 대법관이 권력의 입맛이나 코드에 맞추어 제청되었다는 의혹이 되풀이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번 신임 대법관 제청도 시민단체의 영향을 받아서가 아니라 사법부의 독자적인 판단에 의해 제청되었음을 믿고 싶다. 대법원장의 대법관 인사제청권이 권력의 의중이나 시민단체의 주장에 흔들린다는 것은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사법부의 독립은 남이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사법부 스스로의 결연한 의지에 달려있다는 것을 명심할 때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