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10대 기업 CEO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일감 몰아주기 근절 등을 강조했지만 법망을 피한 기업들의 편법은 그치지 않고 있다. 임준선 기자
정부는 재벌개혁을 핵심 국정과제로 삼아 기업들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10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10대 기업 CEO들과 간담회 자리에서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 의사 등을 밝히며 기업들 전횡에 적극 맞서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김 위원장은 “공정경제와 혁신성장 모두를 심각하게 저해하는 일감 몰아주기는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며 “선제적으로 개선해달라”고 거듭 주문했다.
현재 정부는 크게 ‘과세’와 ‘금지’를 통해 기업들의 일감 몰아주기를 제재하고 있다. 과세는 지배주주 본인이나 특수관계인 등이 일정 지분을 소유한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줘 영업이익이 발생할 경우 이를 증여로 판단, 수혜기업 지배주주 등에게 세금을 물리는 식으로 이뤄진다. 또 ‘총수 일가 사익편취 금지 규제(공정거래법 제23조의2)’에 따라 대기업집단 소속 계열회사가 총수 일가 지분이 상장사 30%, 비상장사 20% 이상인 계열회사와 일정 금액(해당 연도 거래 총액 200억 원, 거래 상대방 평균 매출 12%) 이상 거래하는 행위는 원천 금지한다.
그러나 일부 기업은 이러한 법망을 교묘히 피해 사익을 취하고 있다. 현행법상 과세는 내부거래 비중이 연 매출의 일정 비율(대기업 30%, 중견 40%, 중소 50%)을 넘는 경우에 한해서만 이뤄진다. 그러다보니 매출이 적게 산출되는 특정 사업영역에서 비정상적 일감 몰아주기가 횡행한다. 금융계열사에 대한 대기업들의 퇴직연금보험 몰아주기가 대표적인 예다. 2013년 업계에선 자체적으로 퇴직연금 계열사 적립금 비중 한도를 50%로 규정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퇴직연금 적립금 대부분을 계열사로부터 충당해 높은 내부거래 의존도를 보인 곳은 현대라이프생명과 현대차투자증권이다. 연합뉴스
현대라이프는 4차례에 걸친 유상증자와 계열사가 지원하는 퇴직연금으로 경영 전반을 이어가고 있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적정성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2012년 녹십자생명을 인수해 출범한 현대라이프는 누적 당기순손실 2800억 원을 기록하며 매년 만성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사측은 지난해부터 인력감축과 조직 통폐합, 개인영업 철수 등에 나섰고 2000명에 달했던 보험설계사 인원은 현재 40여 명으로 대폭 줄었다. 이동근 전국보험설계사노조 현대라이프생명 지부장은 “보험회사가 설계사들의 영업활동 없이 경영을 이어간다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현재 현대라이프는 퇴직금 운용 수익으로 버티는 꼴”이라고 설명했다.
삼성화재는 계열사 적립금 비중이 업계 자율결의 한도인 50% 이내지만, 지난해 삼성SDI로부터 퇴직연금 보험을 경쟁 입찰 없이 독점적으로 받아온 사실이 드러났다. 2015년 기준 삼성SDI 퇴직연금 보험 총추계액 5496억 원 중 삼성화재 적립금은 90.6%인 4978억 원에 이른다. 당시 삼성SDI 사외이사 등 내부 임직원들은 삼성화재의 낮은 금리를 지적하며 퇴직연금사업자 다변화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삼성화재 관계자는 “적립금 비율은 여전히 동일하다”면서도 “당시 재무건전성, 자산운용 역량, 수익률 등을 모두 고려해 저희를 연금사업자로 선정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금융당국은 오는 7월부터 ‘금융그룹 통합감독제도’를 시범 운영하며 기업집단 소속 금융계열사의 내부거래 의존도 등을 검토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그 제재 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비금융 계열사의 경영 부실에 따른 금융사의 실적 악화 가능성 등을 관리하는 것에 그치기 때문이다.
일부 기업은 일감 몰아주기 금지 적용 대상이 한정적이라는 점을 활용하기도 한다. 적용 대상이 자산 5조 원 이상 기업집단에 그치다 보니 5조 원 미만 중견기업들이 대기업 못지 않게 일감 몰아주기를 하고 있는 것. 지난 4월 SPC 등이 공정위 조사를 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허영인 회장 일가 등 지배주주가 지분 100%를 소유한 계열사 샤니와 호남샤니 등의 매출 중 상당액이 내부거래로 발생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일감 몰아주기 의심정황이 나타난 중견기업은 SPC 등 10곳에 이른다. 박정훈 기자
이러한 기업들 편법을 막기 위해 모든 사업자에 적용할 수 있는 ‘부당지원 금지(제23조1항7호)’를 통한 제재가 그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김남근 법무법인 위민 변호사는 “해당 조항 등으로 기업들의 편법을 제재하기 위해선 기업 행위가 시장 경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증명해내야만 한다”며 “그 이익을 계열사에 귀속시켰다는 증거만으론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제재 조치를 받은 곳은 삼양식품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진다.
공정위는 이와 관련한 검토는 아직 없다고 밝혔다. 공정위 관계자는 “부당지원 금지 조항으로도 중견기업 등에 대한 제재가 가능하다”며 “사익편취 금지는 대기업집단을 전제로 진행하는 것으로 적용 대상 확대에 대해선 아직 논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퇴직연금보험 몰아주기 등과 관련한 입장은 결국 조사·제재 여부 등과 직결되는 사안으로 원칙상 알려드릴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성진 기자 reveal@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