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KLPGA 투어 NH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인주연. 사진=KLPGA
[일요신문] 골프계 신데렐라가 새롭게 등장했다. 투어 4년차 인주연은 지난 13일 경기도 수원 골프장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NH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숱한 스타들이 쏟아지는 KLPGA에서 인주연은 유난히 힘든 과정을 거치며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스토리로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에 ‘일요신문’은 인주연을 우승 골퍼로 키워낸 어머니 문상춘 씨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 유난히 활발했던 아이
문 씨와 전화 통화가 연결된 지난 23일은 인주연의 우승 이후 10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문 씨는 여전히 감동이 가시지 않는 목소리였다. 그는 “과거에는 없던 인터뷰 요청이 많이 들어오고 있어서 또 한 번 딸의 우승을 실감하고 있다. 이 정도 선수는 아직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메시지만 200개 넘게 받았다”는 인주연 못지않게 어머니에게도 축하 인사가 몰려왔다. 그는 이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우승 확정 이후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인주연. 사진=KLPGA
우승자 타이틀을 달게 된 인주연에게 인터뷰 요청 외에 어떤 것이 달라졌을까. 가장 가까이서 그를 지켜보는 어머니는 ‘자신감’을 꼽았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우승을 경험하고 나니 아무래도 자신감이 조금은 올라간 듯 보인다. 표정도 편안해진 것 같고 스윙에서도 자신감이 드러난다.”
“다시 태어나도 골프선수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는 인주연은 실내 골프연습장을 운영하던 아버지 친구의 추천으로 골프채를 잡게 됐다. 아버지는 친구에게 학교 대표로 육상대회에 나가고 태권도도 좋아하는 딸의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다음에 딸(인주연)을 데리고 오라고 했고, 처음 보자마자 “골프를 시켜도 되겠다”고 말했다. 문 씨는 “주연이가 그때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지금보다 훨씬 호리호리했지만 뼈대는 크고 또래보다 키도 월등했다”고 회상했다.
인주연은 어려서부터 집안에 있기보단 밖에서 뛰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문 씨는 “첫 돌이 지나고 걸음마를 떼면서부터 집 앞 놀이터에서 살다시피 했다. 농담이겠지만 ‘다음 생에 기회가 된다면 유도선수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말도 한 적이 있다. 아이가 워낙 힘이 좋다”며 웃었다. 인주연은 골프계에서 ‘힘주연’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이 운동선수로서 도움이 되기도 한다. 문 씨는 딸의 성격에 대해 “어려서부터 평균 이상으로 활발한 아이였다(웃음). 초등학교 고학년 때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하더라”며 “친구들과 옷 맞춰 입고 학예회 등 무대에서 춤을 추기도 했다”고 말했다.
가수의 꿈은 일찌감치 접어야 했다. 함께 춤을 즐기던 친구들이 음악 학원에 다녔던 것과 달리 인주연은 어머니의 반대로 그러지 못했다. 연기 학원에 다니고 싶다는 의사도 표했지만 넉넉지 못한 형편에 꿈을 접어야 했다.
인주연의 일상. 사진=인주연 어머니 문상춘 씨 제공.
# 홀로 원룸에서 지내던 중학생 골퍼
최근엔 분위기가 덜하지만 여전히 골프는 국내에서 ‘귀족 스포츠’라는 이미지가 존재한다. 특히, 취미가 아닌 프로골퍼로 거듭나려면 만만치 않은 비용이 필요하다. 딸의 음악 학원행을 반대하던 인주연의 어머니는 어떻게 골프를 시키게 됐을까. 문 씨는 “사실 아이 아빠와 나는 골프에 대해 전혀 몰랐다. 만약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그렇게 비용이 드는지 알았다면 시작을 안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처음엔 중고 골프채를 구입하고 한 달에 10만 원짜리 실내 연습장에만 오갔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이 되며 코치 선생님을 따라 경기도 안성으로 가야 했다. 문 씨는 “원곡면이라는 시골 동네였는데 연습장 주변에 원룸이 있었다. 주연이와 함께 골프를 하던 또래 친구들도 다 거기서 지냈다”면서 “다른 아이들은 다 엄마들이 따라가서 함께 있었는데 맞벌이를 하는 우리 집은 그렇게 못했다. 중학교 2학년 어린 딸을 그곳에 두고 오며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 ‘탱크’ 최경주와의 인연
고교 1학년부터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활약하는 ‘탱크’ 최경주와 인연을 맺게 됐다. 인주연이 최경주 재단의 겨울 전지훈련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부터다. 문 씨는 골프 외에도 유소년 선수의 인성 교육도 이뤄지는 이 프로그램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최경주 프로님의 전지훈련에 아이들도 동행한다. 훈련 일정에 자신을 돌아보는 반성의 시간도 갖고 부모님께 편지를 쓰는 시간도 있다. 이야기를 하다 아이들끼리 부둥켜안고 울기도 한다더라”라고 설명했다. 후에 인주연은 장학생으로 선발돼 재단에서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투어 생활을 하면서도 최경주와의 인연은 이어졌다. 문 씨는 “처음 투어 생활을 할 때 주연이가 메인 스폰서를 구하지 못했다. 투어 비용이 없어 힘든 상황이었다”라며 “그때 최 프로님이 개인적으로 도움을 주시더라. 정말 감사한 분”이라며 고마움을 표했다.
인주연도 최경주와 재단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 그는 앞서 “우승 상금(1억 4000만 원)을 부모님께 모두 드리겠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어머니 문 씨는 “상금을 어제(22일) 수령했다”면서 “주연이는 여유가 생기면 최경주 재단에 은혜를 갚겠다는 생각을 해왔었다. 그래서 이번에 상금 일부를 재단에 기부했다”고 밝혔다. “많은 금액은 아니라 말하기도 쑥스럽다. 우리 가족 모두 다음엔 더 큰 금액을 기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공 살 돈 아까워서…” JLPGA 활약 3인방 짠내스토리 골프계에는 인주연 외에도 신데렐라 스토리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선수들이 있었다. ‘파이널 퀸’ 신지애는 아픔이 있는 가정사가 잘 알려진 선수다. 프로골퍼로 성장하기에는 여유롭지 못한 환경에서 자란 신지애는 동년배 선수들이 미국 진출을 선언할 때 한국 무대에 먼저 발을 내딛었다. 안정적 수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불의의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고 두 동생의 부상으로 병수발과 운동을 병행한 스토리는 유명하다. 2010년대 초반 국내 무대를 평정하고 현재 일본 투어에서 활약 중인 이보미와 김하늘도 역경을 딛고 정상에 선 스토리로 유명하다. 강원도 인제 출신으로 ‘산골 소녀’로도 불리던 이보미는 아마추어 시절 그린피를 내지 못해 라운딩을 나서지 못하기도 했다. 김하늘은 “공을 살 돈이 아까워 쓰던 공 단 2개로 대회에 나갔다”는 일화를 소개한 바 있다. 선수들을 지켜보는 ‘팬’이 존재의 의미가 되는 프로 스포츠에서 ‘스토리’는 필수적 요소다. 한국 여자 골프가 세계 최강으로 발돋움한 데에는 대회마다 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팬들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다. 앞으로 또 어떤 스타들이 자신만의 스토리로 감동을 선사할지 팬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