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준선 기자.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는 원래 친박이었다. 그러나 지난 정권 출범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사이가 멀어졌다. 2016년 총선에선 박 전 대통령이 유 대표를 가리켜 ‘배신의 정치’라고 했을 정도였다. 그가 친박 진영과 등을 돌리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15년 2월 원내대표 교섭단체 연설이었다. 유 대표는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박근혜표 복지정책에 직격탄을 날렸다.
당시 친박계는 일제히 유 대표를 공격했다. 청와대 참모들조차 집권당 원내대표였던 유 원내대표에 대해 원색적 비난을 날렸다. 이듬해 총선을 앞두고 유 원내대표는 공천을 받지 못했고, 결국 당을 떠나야 했다. 한때 ‘원박’이었던 유 대표가 친박계로부터 퇴출을 당한 이유에 대해 당시 정치권에선 박근혜 정부의 민감했던 부분을 건드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뤘다.
2015년 1월 1일 논란 끝에 담뱃값을 올렸던 박근혜 정부는 증세라는 표현에 극도로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여권에선 금기시되는 말이었다. 그런데 여당 원내대표가 국민들 앞에서 증세 얘기를 꺼냈던 것이다. 자유한국당 친박 의원은 “나중에 들어보니 유 대표는 원래 갖고 있던 신조를 말했다고 한다. 담뱃값을 직접 거론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시기가 묘하게 겹치면서 박 대통령은 등에 칼을 맞았다고 생각했다”고 귀띔했다.
박근혜 정부는 담뱃값 인상 정책을 추진하면서 ‘국민 건강 증진’을 전면에 걸었다. 우회적으로 증세하려는 꼼수 아니냐는 비판이 계속됐지만 박 대통령과 참모들, 친박 의원들은 흡연율을 낮추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종범 전 경제수석은 논란이 확산되자 2014년 10월 브리핑을 통해 “담뱃값 인상은 흡연으로 인한 국민 건강상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한 것”이라면서 “서민 증세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복수의 친박 핵심 인사들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는 처음부터 세금을 더 걷기 위한 목적으로 담뱃값 인상을 논의했다고 한다. 인수위 시절이던 2013년 1월 박 전 대통령이 공약 실현에 필요한 구체적인 세수 확보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고, 일부 측근들이 담뱃값 인상을 단행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당시 인수위에 근무하며 이 과정에 깊숙이 관여한 친박계 인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의원 시절부터 담뱃값 인상에 부정적이었다. 서민들에게 부담이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대선을 치르며 인수위로 접어들면서 담뱃값을 올리기로 굳힌 것 같았다. 세수를 늘리기 위한 여러 대책 중 그나마 담뱃값 인상이 가장 현실적이고 실효성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안다. 인수위에서 보고서를 만들었고, 정권 출범 후 관련 부처에 전달이 됐다. 인수위 때부터 증세 목적임을 분명히 했다.”
또 다른 친박 전직 의원도 비슷한 말을 들려줬다. 그는 “선후 관계를 따지자면 세금이 먼저, 그 다음이 흡연율로 보는 게 맞다. 흡연율을 낮추려고 가격을 올린 게 아니라,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 인상을 결정했다는 얘기다. 흡연율과 가격 간 상관관계 등은 그 후에 따져봤다”면서 “다만, 증세는 정치적으로 부담스럽기 때문에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명분을 앞에 내세웠던 것이다. 만약, 정말 국민 건강을 생각했다면 2000원이 아니라 훨씬 더 큰 폭으로 올렸을 것”이라고 했다. 이는 박근혜 정부에서 이뤄진 담뱃값 인상이 꼼수 증세 아니냐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증언들이다.
당초 친박 진영에선 담뱃값 인상 시기를 박 전 대통령 임기 2년차인 2014년 1월 1일로 잡았다고 한다. 그러나 여론 수렴 과정에서 서민 증세에 대한 반발이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고, 인상 가격 등 구체적인 대책을 놓고도 쉽게 결론이 나지 않으며 지지부진했다. 야권은 연일 ‘꼼수 증세’라며 공세를 퍼부었고, 여권에서조차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면서 국회통과도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이에 박근혜 정부 청와대 정무라인은 국회의원들을 개별 접촉하며 설득 작업에 나섰다. 당시 정무수석실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친박 의원들이 밤낮으로 움직였고, 우리들도 친분을 최대한 활용해 비박과 야당 의원들을 설득했던 기억이 난다”고 전했다. 홍보라인에서도 몇몇 언론을 활용해 담뱃값 인상에 필요한 우호적 분위기 조성을 모색했다. 그리고 2014년 12월 담뱃값 2000원 인상안은 국회를 통과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박근혜 정부의 담뱃값 인상은 그 목적을 충분히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담뱃값을 올린 후 거둬들인 세금이 큰 폭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반면, 흡연율은 2015년 잠깐 줄었지만 2016년부터 다시 오르면서 가격 인상에 따른 효과가 미미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담뱃값 인상 후 주요 담배판매 회사들의 수익이 급등, ‘서민들 호주머니를 털어 담배회사 곳간만 채웠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자 지난해 7월 자유한국당은 담뱃값을 예전으로 돌리는 방안을 추진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불과 3년 만에 입장을 뒤바꿨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친문 의원은 “솔직히 문재인 정부로서는 (박근혜 정부에) 고맙다. 담뱃값을 올리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 세수가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라면서 “이제 와서 담뱃값을 다시 내리는 것은 시대적으로 맞지 않는 일이고 논의가 필요하긴 하지만 당시 박근혜 정부의 인상 정책이 국민들 눈을 속이는 꼼수였다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