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측이 서로를 비판하는 가운데 서울 ‘흡연지옥’ 3대 명소가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길빵재앙’, ‘태움공원’ 등으로 불리는 3대 거리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색적인 이름에서 드러나듯, 비흡연자들의 기피목록 ‘1순위’로 꼽히는 장소입니다.
흡연자들은 이곳에서도 자신들의 권리를 이해해달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비흡연자들은 고통을 호소하는 중입니다. 양 측의 대립은 극한으로 치닫고 있지만 서울시와 각 지자체는 소극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일요신문i’가 ‘흡연 지옥’ 3대 명소의 실태를 직접 체험해봤습니다.
서울 중구 순화동에 있는 삼성본관건물. 박정훈 기자
5월 24일 10시경 기자는 서울시청 인근을 찾았습니다. 사진 속 건물은 중구 태평로 삼성 본관입니다. 평범한 건물이지만 뒤편에는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비흡연자들 사이에서 ‘태움공원’이라고 불리는 공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건물 뒤편으로 발걸음을 옮긴 순간,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건물 앞 공원에서 수많은 직장인들이 우르르 몰려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점심시간이 아니었는데도 흡연자들의 수는 약 50여 명이 족히 넘어 보였습니다.
공원 한쪽에서 걸터앉은 직장인들은 전부 입에 담배를 물고 있었습니다. 삼삼오오 모인 직장인들이 ‘담배구름’을 만들고 떠나면, 또 다른 직장인들의 더욱 커진 ‘담배구름’이 빈자리를 메웠습니다. 마치 로테이션을 돌듯, 약 10개 이상의 ‘담배구름’이 공원을 뿌옇게 채웠습니다.
삼성본관건물 뒤편 공원. 박정훈 기자
공원 곳곳에는 ‘금연구역’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흡연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나무의 숫자보다 많은 ‘담배구름’ 때문에 ‘태움공원’의 진면목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약 10분 동안 공원에 머물렀지만 기자의 목은 이미 잠겼고, 혀끝에선 계속 가래가 올라왔습니다.
공원을 찾은 이 아무개 씨(63)는 “오늘 처음 여기 왔는데 흡연 풍경을 보면서 너무 어이가 없었다”며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 근무하는 직장인들이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인데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는 것 같다. 공원 안쪽에는 들어갈 엄두가 안 난다”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공원 관리자들은 담배꽁초 수십 개가 떠있는 물동이를 나르고 있었습니다. 한 관리자는 “건물 관리소 측이 공원을 흡연구역으로 지정했다”며 “금연구역 표지가 있지만 이곳은 직장인들을 위한 흡연구역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정말 이 공원이 흡연구역일까요? ‘일요신문i’ 취재 결과, 공원은 삼성본관 건물 측의 사유지였지만 흡연구역은 아니었습니다. 삼성본관 건물 관계자는 “우리는 그 땅을 흡연구역으로 지정한 일이 없다. 그래서 노란선 안쪽으로 담배를 피라고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중구청이 공원 옆 도로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했지만 공원은 금연구역으로 정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삼성본관건물 뒤편 공원. 박정훈 기자
위쪽 사진의 노란 선이 보이시나요? 삼성본관 건물 측에서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공존을 위해 선을 그어놓은 것입니다. 노란 선 안쪽은 흡연자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하지만 노란선 바깥쪽에선 수많은 흡연자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삼성본관 건물 관계자는 “주변에 냄새가 많이 퍼지고 있어 보행자들의 불편이 크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단속 권한이 없어 어쩔 도리가 없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일요신문i’는 노란선 바깥쪽의 흡연자들을 상대로 수차례 인터뷰를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면서 인터뷰를 거절했습니다.
삼성본관건물 뒤편 공원 옆 도로. 박정훈 기자
‘태움공원’의 또 다른 특징은 담배 냄새가 인근 공로와 주변식당으로 퍼진다는 점입니다. 공원에서 약 50m 떨어진 도로에서도 매캐한 담배냄새가 코끝을 찔렀습니다. 길에서 만난 직장인 강 아무개 씨(여․33)는 “냄새 때문에 그 공원을 전부 싫어한다. 길을 걸어갈 때도 일부러 숨을 참거나 돌아간다”며 “저 공원은 이곳에서 악명이 높기로 유명한 곳이라 다들 피한다”고 전했습니다.
중구청 보건과 관계자는 “워낙 심각한 지역이다. 사유지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할 수 없어 주변 공로라도 금연구역으로 지정했다”며 “주변에 고층빌딩이 많아 직장인들이 ‘웬 떡이냐’면서 몰려온다. 삼성본관 건물 측에 흡연실을 만들거나 금연지도에 나서달라고 부탁하고 있지만 어려운 점이 많다”고 전했습니다.
이제 한 곳을 둘러봤습니다. 벌써 가슴이 답답하신가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서울 최대의 중심가인 ‘명동’에는 ‘길빵재앙길’로 불리는 곳이 있습니다. 길을 막고 담배를 피우는 직장인들 때문에 생겨난 이름입니다. 이곳에선 담배 연기 냄새를 맡지 않고는 절대로 지나갈 수 없습니다. ‘담배 연기’가 숙명인 ‘길방재앙길’을 소개합니다.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 인근 거리. 박정훈 기자
명동성당 바로 앞에는 증권가 건물이 즐비합니다. 성당에서 건물 쪽으로 내려가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공원과 길이 있습니다. 지름길이기 때문에 시간을 아끼려면 피할 수 없습니다. 공원을 지나면 나무가 무성한 건물이 등장합니다. 얼핏 살펴보면 “이곳이 담배랑 무슨 상관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사진을 보면, 건물 양쪽으로 우르르 몰려있는 직장인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점심식사를 마친 직장인들이 ‘식후 땡’으로 담배를 피우기 위해 길을 막고 있는 것입니다.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 인근 거리. 박정훈 기자
약 5명의 사람들이 좁아터진 길가 사이에서 담배연기를 내뿜었습니다. 일렬로 쭉 늘어선 이들은 대부분 담배꽁초를 땅에다 버리고 있었습니다. 공원에 있는 사람들 일부는 담배 냄새 때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습니다.
비흡연자들의 불만은 상당했습니다. 공원에 산책을 나온 장 아무개 씨 (46)는 “주변 증권가 건물이 흡연자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지 않았다”며 “근처가 전부 금연구역이라서 흡연자들이 이곳으로 몰려온 것이다. 흡연자들의 심정이 이해는 가지만 골목이 전부 흡연거리가 돼 버려서 안타깝다”고 밝혔습니다.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 인근 거리. 박정훈 기자
흡연자들도 억울한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직장인 A 씨는 “건물에 흡연실이 없어서 아침에 출근하면 수 십 명이 이곳에 와서 담배를 피고 있다”며 “건물 주변에서는 공간이 없어 이곳이 암묵적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그나마 우리도 눈치를 보기 때문에 길 안쪽에서 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 인근 거리. 박정훈 기자
오후 2시경, 수많은 흡연자들이 한바탕 자리를 휩쓸고 떠났습니다. 건물 관리인들은 버려진 담배꽁초 수십 개를 치웠습니다. 관리인 B 씨는 “제발 한곳에 좀 버리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새벽 시간부터 하루에 세 번씩 나와서 치우는데, 언제나 청소가 힘들다. 아무데나 꽁초를 버리기 때문”이라고 전했습니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 그랑서울 타워 앞 보행로. 박정훈 기자
오후 3시경 기자는 종로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3대 명소의 종착역인 ‘길빵삼각지대’를 찾았습니다. ‘그랑서울과 SC은행 사이 보행로’라는 금연구역 팻말이 보이시나요? 팻말에는 “구민의 건강보호를 위해 금연구역으로 지정했습니다. 이곳에서 흡연시 1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이 길은 분명히 ‘금연구역’이지만 ‘길빵삼각지대’라는 별칭으로 불립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약 100명 이상의 직장인들이 3개의 건물 앞에서 보행길 쪽으로 동시다발적으로 담배연기를 내뿜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 SC제일은행 흡연구역. 박정훈 기자
기자 역시 길에 들어선 순간, ‘매머드급’ 담배연기에 질식할 뻔했습니다. 보행로 오른편 SC제일은행 건물 앞 흡연구역은 ‘길빵삼각지대’의 서막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직장인 수십명이 울타리 안에서 담배를 피울 때마다, 보행길 쪽으로 냄새가 밀려왔습니다. 길에서 만난 행인 C 씨는 “세상에…이런 길은 처음이다. 가래가 계속 나온다”라며 계속 마른기침을 했습니다.
빠른 걸음으로 위기를 넘기려는 찰나, 또 한 번 ‘담배지옥’이 찾아왔습니다. 길 왼편의 그랑서울타워 흡연 장소에서도 연신 담배연기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나무를 따라 걷고 있었지만 풀냄새는 맡을 수 없었습니다. 간접흡연의 피해를 온몸으로 겪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 그랑서울 타워 안쪽 흡연구역. 박정훈 기자
특히 보행길 끝에 있는 음식점은 ‘길빵삼각지대’를 위한 궁극의 장소였습니다. 음식점 앞에서 삼삼오오 모인 직장인들이 서로 경쟁하듯 담배를 태우고 있었습니다. 산책을 나온 주민들은 대부분 눈살을 찌푸리면서 이곳을 지나쳤습니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원래 그쪽이 간접흡연 피해가 많아 흡연 집중단속 구간이다”며 “하지만 사유지가 많아 흡연을 직접적으로 단속하기 어렵다. 그래도 건물 내에 흡연실을 설치해달라고 건물주에게 공문을 보내고 있다”고 답변했습니다. 종로구청의 소극적인 태도 때문에 ‘길빵삼각지대’ 인근 주민들은 괴로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 보행로 앞 음식점. 박정훈 기자
3대 ‘흡연지옥’에 대해 서울시는 뒷짐을 지고 있습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금연구역은 담배를 피울 수 없는 곳이다. 하지만 반대해석을 하면, 그 밖에선 담배를 필 수 있다는 뜻”이라며 “금연구역이 아닌 곳은 단속이 어렵다. 흡연자들 사이에 행인들을 조금 배려하는 문화가 성숙돼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태움공원, 길빵재앙길, 삼각지대... 앞으로 어떤 이름이 더 생겨날까요? 건물 내 흡연부스 설치 등 보건당국의 강력한 대응이 시급해 보입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