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 ||
이번 토론회로 그동안 부시후보에 못미쳤던 케리후보의 지지도가 치솟아 2%포인트 정도 앞질렀다는 보도도 있었다. 1960년 대통령 선거 때 민주당 케네디 후보가 텔레비전 토론회를 통해 공화당의 닉슨 후보를 확실하게 압도한 이래 텔레비전 토론은 대통령선거의 대세를 결정짓는 주요 변수로 등장했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도 텔레비전 토론회는 유권자들이 후보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외교정책과 국가안보문제에 초점을 맞춘 이번 제1차 토론회의 승자는 일단 지지도를 회복한 민주당의 케리 후보인 셈이다. 그러나 이번 토론회에서 돋보인 또 하나의 승자는 바로 사회를 맡았던 짐 레더라는 언론인이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대선 후보토론을 훌륭하게 이끌었기 때문이다. 짐 레더가 대선후보 토론을 진행한 것은 이번으로 10번째를 기록했다. 1988년 한 차례 대선 후보 토론회 사회자로 나선 이래 1992년 대선 때 2번, 1996년 대선 때 3번, 그리고 2000년 대선 때는 3차례 토론회를 혼자서 진행했다. 이쯤 되면 짐 레더는 그 이름 석자와 얼굴이 역대 대통령 후보 못지않게 널리 알려진 유명인사가 된 셈이다. 우리 같으면 벌써 현역에서 은퇴했을 66세의 나이에도 그는 여전히 방송현장에서 뉴스 앵커로 활약하고 있다.
언론인 짐 레더가 대선후보 이상으로 돋보이는 이유는 1959년 신문기자로 입신한 이래 45년 동안 한눈 팔지 않고 오로지 언론인으로서의 외길을 걸어왔다는 점 때문이다. 그는 평소에도 방송뉴스가 시청률을 의식해 오락 또는 이벤트적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면서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전통적 보도방식을 고집해 왔다. 아울러 후배들에겐 기회있을 때마다 ‘패거리 언론’의 유혹을 떨쳐야 한다고 충고하곤 했다고 한다.
그는 특히 “설사 정치권에서 손짓하더라도 이 축복받은 세계(언론계)를 떠나지 않겠다”는 자신의 신념을 여러 차례 다짐해 온 언론인이다. 텔레비전을 통해 얼굴이 좀 알려지거나 지명도가 높아지면 으레 정치권에서 유혹의 손길을 뻗히고 또 그 유혹을 기다렸다는듯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우리네 언론풍토에선 열 차례가 넘게 대선후보 토론회를 진행하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직분에 충실한 짐 레더야말로 훌륭한 귀감(龜鑑)이 될 만하다.
평소엔 차세대 정치자원을 육성하는데 무관심하다가 선거 때만 되면 학계나 언론계 등 여러 전문 분야를 들쑤시는 우리 정치의 후진성도 문제지만 이름만 좀 알려졌다 하면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우리의 언론풍토도 후진적이긴 마찬가지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직업을 ‘`축복받은 세계’로 자부하면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짐 레더야말로 우리 시대의 `‘축복받은 언론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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