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필상 | ||
최근 SK(주)의 최대 외국인 주주인 소버린 자산운용은 임시주총소집을 통해 형사범죄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회장을 퇴진시키는 정관 신설을 요구하고 있다. 일단 이사회가 임시주총을 거부했으나, 법적 소송절차를 걸쳐 곧 소집될 전망이다.
최 회장이 물러날 경우 SK(주)는 물론 SK그룹 전체에 미치는 파장은 엄청나다. 소버린이 국내최대 정유회사인 SK(주) 지분을 인수하는 데 들인 돈은 모두 1천7백억원 정도이다. 이것으로 연간 매출액이 15조원이 넘는 SK(주)를 좌지우지하며 우리나라 에너지 주권을 위협하고 있다. 더욱 문제는 SK(주)가 SK텔레콤등 계열사간 출자관계를 통해 자산규모가 45조원에 이르고 국내 재계서열 4위인 SK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SK(주)의 경영권이 넘어갈 경우 SK그룹 전체의 운명은 외국자본의 손에 좌지우지될 수 있다.
이번 소버린의 경영권쟁탈전이 성공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동안 SK(주)는 경영의 투명성을 강화하면서 경영실적을 크게 개선하여 상반기 순이익을 7천억원 이상 기록했다. 따라서 정관개정에 필요한 출석주주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이번 시도는 연말결산을 앞두고 최태원 회장을 직접 공격하는 방식으로 경영권을 위협하여 배당을 늘리고 주가를 최대한 끌어 올리려는 전략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건 이번 일은 SK(주)가 소버린의 술수에 걸려 계속 이익을 쌓아주고 있고 언젠가는 통째로 회사를 넘겨줘야하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실로 큰 우려는 SK만 이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다. 국내 주요기업들의 외국인 지분이 대부분 50%를 넘고 있어 앞으로도 제2, 제3의 SK사태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삼성전자, 국민은행, 포스코, SK텔레콤, 현대자동차 등 우리 경제를 이끄는 주요 기업들의 지분을 절반 이상 내주고 증권시장은 외국자본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향후 우리경제는 외국자본의 공격에 대해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할 경우 주권을 잃고 국제적 투기 희생물로 전락할 수 있다. 따라서 국익은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원칙하에 차등의결권 도입, 공개매수기간 중 증자 허용 등 적극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차등의결권제도는 경영권을 갖고 있는 대주주의 주식에 대해 보통주보다 많은 의결권을 주는 대표적인 경영권 방어장치로써 유럽에서 흔히 이용되고 있는 제도다. 한편, 공개매수 중 유·무상증자 허용은 기업이 공개매수를 통해 경영권을 위협받을 경우 기존 주주의 주식수를 늘리도록 허용함으로써 경영권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미국 등 선진국에서 시행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재벌개혁과 경영권방어대책은 별개의 사안이라는 것이다. 총액출자제한제도, 족벌경영제도개선, 계열 금융기관의 의결권 제한 등은 밀실경영, 문어발식 확장 등 재벌의 불건전한 구조와 관행을 시정하여 기업가치를 극대화시킴으로써 오히려 외국자본의 공략을 막는 정책이 될 수 있다. 이런 견지에서 기업들은 경영권 방어논리를 내세워 무조건 정부의 개혁요구를 회피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내부구조 개혁을 통해 투명하고 효율적인 경영체제를 구축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