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 ||
칼칼하고 차가운 날씨 속에서 낙엽을 태우는 경비아저씨가 평화로워 보이던 지난 주말, 모처럼 어머니와 함께 짧은 여행을 떠났다. 매일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일이 업인 어머니는 가야산 상왕봉까지 지치지 않고 잘도 걸었다. 된장찌개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한 어머니는, 이제야 어머니가 우리의 보이지 않은 힘이었다는 걸 인지하기 시작한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나이가 되면 제일 아까운 게 시간이야.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있으면 오히려 사는 게 꿈 같아.”
꿈처럼 허무하지만 꿈처럼 아름답다는 거였다. 그러니 아무거나 먹을 수 없고 아무하고 놀 수 없단다. 소고기, 돼지고기 먹지 않고, 밀가루 음식을 먹지 않는 어머니가 즐겨 먹는 음식은 감자와 김치볶음, 생선찌개! 그야말로 ‘아무거나’ 같은데 된장찌개 백반을 받아든 어머니의 표정은 마치 성소에 들어온 제사장처럼 경건하기만 하다. 그 표정을 훔쳐보려니까 마음 밑바닥에서 뭔가 뭉클한 느낌이 차 오른다. 그 느낌이 충만함인 건지, 안쓰러움인지 알 길이 없는데 문득 밥은 그렇게 어머니의 표정처럼 신성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먹지 않으면 이어갈 수 없는 목숨, 삶이 경건한 거라면 밥도 경건한 것이고, 삶이 눈물이면 밥에 눈물이 밴다. 삶이 살아볼 가치가 있는 거라면 밥은 살아볼 만한 가치를 만드는 신성한 약인 거라고.
우리는 밥을 먹고 생명으로 흐른다. 생명은 흐르는 것이고 만나는 것이다. 만남이 끊기면 감옥이고, 흐름이 끊기면 죽음이다.
모건 스펄록의 슈퍼 사이즈 미(Super Size Me). 그는 한 달 동안 맥도날드 패스트푸드만을 먹었다. 1주일에 5kg이 늘었고, 한 달이 지나고 나니까 12kg이 늘었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지고, 혈압도 솟구쳤다. 성적 능력은 떨어졌다. 패스트푸드 슈퍼 사이즈가 흐르지 못하고 쌓이게 만드는 음식이라는 증거였다. 몸 안으로 수렴해서 몸을 흐르다가 몸 밖으로 흘러나가지 못하고 쌓이게 만드는 음식은 생명을 살리는 음식이라기보다는 생명을 일그러뜨리는 사료다. 생명은 생명을 먹고 생명으로서 유전하는 것이지 어디로부터 왔는지 궁금하지 않은 칼로리를 먹고 때우는 것이 아니다. 생명은 생성이라고, 육체는 깊은 우주적 영성의 그물이라고 말하는 김지하 선생은 <생명학>에서 이렇게 말했다.
“생명이 생명을 먹는 이치는 눈에 보이는 질서에 대한 국소적인 관찰만으로는 결코 명확히 알 수 없어요. 그것은 먹이사슬을 통한 눈에 보이지 않는 무궁한 전체 우주 생명의 끝없는 자기조직화 과정이요, 기의 전이, 유통, 순환과정이며, 먹음으로서의 수렴과 먹힘으로서의 확산의 반복을 통한 끝없는 차원변화의 영성적인 유기화 과정입니다.”
이것이 아무거나, 아무렇게나 먹을 수 없는 이유다. 우리는 생명을 먹고 생명으로서 흐르고 싶다.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