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 ||
“부정적으로 평가될 겁니다.”
대통령이 그렇게 분명하고 돌연해서 대답을 듣는 우리들이 오히려 야릇했다. ‘노무현’을 배반해야만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인지, ‘대통령직’에 대한 멀미도 났었다. 꼭 1년 전 한 방송사와의 대화에서였다. 그 때 대통령은 말했다.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이라크 파병을 하는 것은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거라고. 북핵문제가 그만큼 무겁고 중요하며 한반도 생존이 걸린 비장한 문제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 말은 적어도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 혹은 자신감일 때만 의미 있는 말이었다.
그리고 1년, 명분 없는 파병이 있었고, 덕분에 ‘테러’를 걱정해야 하는 나라가 됐다. 부시는 재선에 성공했다. 부시는 북한 선제공격까지 불사할 것인가, 라는 물음이 유의미한 물음이 됐다. 이제 한반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얼마 전 미국에 간 대통령은 북한 주장에 일리있는 측면이 있다는 ‘노무현 다운’ 발언을 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발언이었을까, 아니면 이제 ‘노짱’ 대통령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어쨌든 나는 발언의 시점이 절묘하다고 느꼈다. 세계 어느 나라도 떳떳하게 나서지 못하는 이라크 파병이었다. 그런데 ‘노무현’을 배반하면서까지 대규모의 파병을 했다! 그리고 부시가 당선됐다! 그러니?!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서는 북한을 향한 선제공격도 불사한다는 이상한 논리까지 하나의 상식으로 돌아다니는 미국 땅에서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은 과연 사람이기는 한 건가? ‘한미동맹’이라는 이름으로 끌려 다니기만 하면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 권리는 저절로 보장되는 것인가? 과연 부시는 북핵을 이유로 북한의 손발을 꼭꼭 묶는 강경한 대북제재를 풀지 않을 것인가, 나아가서는 선제공격까지 것인가? 북한이 불바다가 되면 남쪽은 무사할까?
지금 한반도는 세계에서 가장 긴장이 높은 곳이다. 우리 운명을 외국에 맡겨놓은 채 그들의 눈치만 보고 있을 것인가?
대북제재는 협상전략으로써 유용성이 없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이회창’이 아니라 ‘노무현’을 선택한 세력의 시대적 요구다. 그 발칙(?)한 발언에 대해 미국이 기분 나쁠 수는 있겠지만 완전히 무시하거나 짓밟을 수가 없다. 진짜 동맹이라면 이제 필요한 것은 입장조율이다.
노 대통령은 한반도가 비핵화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 북핵을 용납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견지함으로써 우리와 미국이 기본적으로는 동일한 입장임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미국과 조율해야 하는 견해차이는 무엇인가?
노무현 대통령의 입장은 북이 핵을 가지는 일은 염려스러운 우려지만, 강경한 대북제재로는 그 우려를 제대로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북이 왜 그렇게 하려고 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그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바람의 마음이 아니라 햇빛의 마음이다.
이와 같은 입장을 살려내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무엇보다도 대화의 한 당사자인 북한의 체제안보 우려를 해소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다음은 북한이다. 북한이 신뢰를 보여주고 마음을 열어야 한다. 신뢰가 바탕이 된 본격적인 남북대화가 필요하니까. 한반도의 비핵화, 한반도의 평화에 대해 누구보다도 절절한 것은 바로 우리니까.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