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 ||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에 이르는 대형 국책사업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도박판의 ‘본전논리’와 흡사한 데가 있다. 추진과정에서 이미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판정이 났는데도 그동안 쏟아넣은 예산이 아깝거나 또는 대선(大選)공약이라는 명분 때문에 중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하루라도 빨리 정치적 결단을 내려 중지해야 할 사업도 날짜만 질질 끌다가 굽도 펴도 못하게 되는 사례가 허다하게 생기곤 한다.
서울과 인천을 연결하는 경인운하사업이 3년 만에 백지화되는 바람에 1천2백억원의 위약금을 나랏돈으로 물어주게 된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처음부터 경제성이 없고 심각한 환경파괴가 우려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외면한 채 밀어붙였다가 결국 국민의 혈세를 축내는 사태에까지 이른 것이다. 게다가 총사업비가 당초보다 2배 이상 늘어난 국책사업이 29건이나 되는 데다 거기에 쏟아부어야 할 예산도 17조원을 넘는다고 한다. 그야말로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
처음보다 예산도 늘어나고 공기(工期)도 늘어난 대표적인 케이스가 고속철도사업이다. 1998년에 완공한다던 계획이 2010년까지 12년이나 연장되는 바람에 예산은 5조8억여원에서 무려 3배나 늘어난 18조4천억여원이나 들게 되었고 ‘서울~부산 2시간 내 주파’라는 약속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당초 계획보다 정거장이 늘어난 데다 역사(驛舍)의 지상화냐 지하화냐의 논란으로 노선이 꾸불꾸불하게 되어 운행시간이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대형국책사업의 시행착오는 비단 경인운하나 고속철도뿐만이 아니다. 당초부터 환경문제를 가볍게 생각했다가 낭패를 본 새만금사업이나 전국 주요도시의 텅텅 빈 국제공항도 마찬가지다. 심지어는 채 1년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공항청사를 새로 지었다가 노선이 폐지되어 청사건물만 덩그렇게 서 있는 ‘유령공항’도 있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된 국책사업을 중단하지도 못하고 매듭짓지도 못하는 것은 이들 사업 대부분이 대통령 공약사항인 데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재검토니 뭐니해서 공기를 늦추었기 때문이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된 국책사업이 이토록 늘어난 것은 5년마다 대선후보들이 색깔만 화려한 장밋빛 지역공약을 다투어 내놓았기 때문이다. 허허벌판에 잡초만 무성한 국가공업단지, 공항청사와 활주로는 있어도 여객기가 보이지 않는 공항, 아무리 바위를 쏟아 부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간척사업 등을 보면서 역대 대선 후보들은 눈앞의 표만 의식한 공약이 국가경제를 얼마나 멍들게 하는지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 국책사업에 들어가는 돈이 국민의 혈세(血稅)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