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인 이광훈 | ||
원산지가 한국인 우리 꽃 이름에 일본 고관의 이름이 붙은 것은 하나부사뿐만이 아니다. 조선화관(朝鮮花管) 또는 평양지모(平壤知母)라는 꽃에는 조선을 강제합병한 이후, 초대 총독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의 이름이 붙어있다. 조선화관의 또 다른 이름이 바로 사내초(寺內草)인 것이다. 조선화관이 ‘사내초’가 된 것은 이 꽃을 처음 발견한 일본의 식물학자가 자신의 조사활동을 후원해 준 총독에게 감사의 뜻으로 데라우치라는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은 이순우씨가 펴낸 우리문화재 보고서 ‘데라우치, 조선의 꽃이 되다’라는 저서에서 처음으로 밝혀진 것이다. 우리는 올해로 일본 식민지배의 질곡으로 풀려난 지 만 60주년을 맞았다. 60년이라면 강산이 여섯 번이나 바뀐다는 긴 세월이다. 우리는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일제잔재 청산이니 역사 바로세우기니 해서 잘못된 과거사를 바로잡는 노력을 해왔다. 그런데도 우리의 토속꽃 이름에 조선침략에 앞장섰던 일본대사나 초대 총독의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하나부사나 사내초 말고도 부끄러운 일은 또 있다. 이번 서남아시아일대를 강타한 지진해일의 피해상황을 보도하면서 ‘쓰나미’라는 용어를 아무런 여과없이 없이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이다. 지진해일을 뜻하는 ‘쓰나미’(津波)라는 단어는 워낙 지진과 해일피해가 많은 일본이 국제학회에 보고하면서 쓰기 시작한 학술용어다. 따라서 국제학회에선 지금도 바다에서 일어난 지진의 영향으로 해안까지 밀려오는 거센 파도를 뜻하는 학술용어로 `쓰나미’를 쓰고 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학술용어라고 해서 우리 신문까지도 그 생소한 일본의 학술용어를 써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마땅하게 대체할 용어가 없다면 모를까 지진해일이라고 해도 다 알 수 있는 말을 굳이 `쓰나미’라고 써야 하느냐는 얘기다. ‘쓰나미’라는 말이 일본어라고 해서가 아니라 모든 외국어를 새로 쓰기 시작할 때는 우리나름의 명분과 실리가 따라야 한다. 어떤 외국어도 자주 쓰면 외래어로 분류되어 국어의 일부분으로 편입되기 때문이다.
모든 문물이 국경 없이 넘나드는 세계화시대에 외국어라고 해서 무조건 거부감을 갖는 국수주의적 심성은 옳지 않다. 그러나 훌륭한 우리말을 두고도 굳이 외국어를 써야 세련된 지식인처럼 보이는 문화풍토엔 분명히 문제가 있다. 스스로 세계 문화예술의 중심국가로 자부하면서도 모국어를 지키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프랑스인들에 비해 우리는 ‘외국어의 침략’에 너무 무심하고 관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하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