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수원대 교수 | ||
그는 집요한 테러리스트처럼 영원을 조롱하고, 신을 공격한다. 아마도 영원히 살기 위해서는 신의 노예로만 살아야 하는 그 역설이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생로병사를 거치는, 유한하지만 당당한 인간으로 살기로 결단한 것인지도.
지금 그 존 던과 관련된 연극이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윤석화의 위트>다. 더 이상 신이 막강하지도, 인간을 종처럼 부리지도 않는 시대에 왜 존 던이었을까? 연극은 신이 가버린 시대에 신적 권위로 여전히 인간을 종 취급하는 뭔가를 다루고 있다. 그것은 학문이고, 병원이고, 기업이고, 조직이겠지만 구체적인 연극의 무대는 병원이다.
연극은 평생 존 던을 연구한 베어링 교수가 암에 걸려 항암치료를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암에 걸린 환자에게 생명은 얼마나 소중한가. 그러나 친절교육을 받은 의사들은 의례적으로 친절할 뿐 누구도 베어링의 생명 그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의 관심은 연구논문의 실험 데이터로서의 베어링의 목숨일 뿐이다. 병원에서 지친 베어링이 한숨처럼 토로한다. “나는 암 때문에 격리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항암제 때문에 격리되어 있는 겁니다.”
이 시대에는 신이 아니라 의학이 인간에게 가혹하다. 인간을 정죄하고 격리시키는 곳은 교회가 아니라 병원이고, 생명의 이름으로 생명으로 사는 일을 경시하는 이는 목사가 아니라 의사다.
“의사들의 회진은 내가 보기에 핵심은 빼놓고 떠들기예요. 핵심은 생명이죠. 그들은 내 몸을 책처럼 공부해요. 내 몸을 책처럼 다뤄요.”
어디 우리의 삶을 책처럼 다루는 곳이 병원뿐이겠는가. 삶과 죽음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뤘던 시인 존 던을 가르친 베어링 교수도 할머니의 죽음으로 결강하게 되었다는 학생을 향해 결석은 자유지만 대가는 치러야 한다며 얼마나 차가웠던가.
이 시대의 신은 학문이며, 병원이고, 기업이고, 조직이며, 돈이다. 그것이 이 시대의 권력이다. 절박하고 뜨거웠던 삶의 내용들도 권력이 되면 얼마나 절망적인가! 의학이 생명 장사만 할 뿐 생명을 구한다는 사명은 잊었다면! 학문이 인생의 깊이를 논하기만 할 뿐 그 깊이를 만져본 일도 없다면! 기업이 돈벌기에만 급급할 뿐 왜 돈을 벌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망각하고 있다면!
권력이 어떻게 인간을 위해 존재할 수 있는지, 그 문제의식이 없이 권력의 확대재생산에만 관심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그때 그사람들>이 되지 않겠는가! <그때 그 사람들>을 보고 나오면서 뒷사람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저건 권력이 아니라 조폭이잖아.”
어떤 조직이든 왜 존재해야 하는지 그 존재 이유를 잃어버리면 조직이 커질수록 조폭을 닮아간다. 그 권력을 맹목적으로 쫓아가지 말고 일정한 거리두기를 해야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거리가 있어야 실체가 보이니까. 그 거리 속에서 존재 이유를 되새김질할 수 있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