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경 이화여대 교수 | ||
30년 전 대학 도서관에서 본 두 건의 자료가 두려움의 단초였다. 하나는 3·1독립선언문에 서명한 33인 민족지도자의 수사기록에 관한 자료였다. 한용운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지도자가 일본 경찰의 문초와 회유로 적어도 취조실에서만은 독립의 의지를 꺾었다는 사실은 아직도 충격으로 남아있다. 다른 하나는 일제시대 한국 연안 바다의 깊이와 조류 그리고 섬들의 현황을 조사해 기록한 자료. 바다 밑까지 조사해 수탈하려는 그들의 면밀함은 대충 살아가는데 익숙했던 어린 학생에게 세상을 다시 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나는 일본을 모른다.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하다. 이는 나름대로 일본을 넘어서려는 전략이기도 했다. 가능하면 일본 상품을 사지 않는다. 일본 신문이나 잡지도 읽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나는 단무지가 싫다. 사시미나 초밥도 즐겨하지 않는다. 애니메이션 몇 편을 빼고는 일본 영화를 본 기억도 드물다.
나는 일본 친구가 없다.
일본인 친구를 사귈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애써 가까워지려 하지 않아서인지 깊이있는 대화를 나눠 본 친구는 기억나지 않는다. 일본학자와 학회활동을 함께한 적도 없다.
독도가 다시 문제가 되면서 몇 년 전에 읽은 과거 일본신문 글이 생각나 다시 찾아봤다. “한국과 같은 것은 본래 독립국으로서 존재할 만큼 단단한 물체가 못된다.” 1910년 8월24일 <도쿄 아사히 신문>에 실린 글의 한 부분이다. 이 신문은 사흘 뒤 더욱 모멸적인 글을 게재한다. “이와 같은 사이비 국가가 폼페이의 박물관에나 진열되지 않고 일본의 이웃에 존재하였던 것은 국제관계가 밀접하지 못했던 결과로서, 교통무역에 힘쓰지 않았던 동양인종의 치욕이다.”
오늘날 일본인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직도 이러한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교과서 문제나 독도를 다루는 방식을 통해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의 생각이 기본적으로 비슷하구나를 짐작할 뿐이다.
이러니 나는 일본을 존경하지 않는다. 그들에게서는 보편적 양식을 찾기가 어렵다. 난징대학살은 잊고 싶고,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피해는 부각시켜 평화주의를 주장하는 행위는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도 동의를 얻기가 어렵다. 이스라엘은 3월15일 예루살렘 부근에서 개최된 유대인 대학살 박물관 개관식에 세계주요국 지도자를 초청했으나 일본인들을 제외했다. 2차대전시 일본군 포로였던 영국 군인들은 일본대사관의 초청을 집단적으로 거부하며 과거 일본군의 잔혹한 포로 대우 실태를 폭로하기도 했다. 이 사례들은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도 일본의 과거사 처리를 보는 눈이 매우 차가움을 입증한다.
싫으나 좋으나 독도는 한일관계의 과거와 미래를 관통하는 상징으로 다시 등장했다. 동해 한가운데 있는 작은 섬과 그를 둘러싼 수역이라는 영토적 의미를 넘어선 지 오래다. 독도의 일본 이름인 다케시마를 두고 벌이는 논란은 결국 우리가 일본을 극복해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삼성전자가 소니를 극복한 사례는 좋은 흐름의 시작일 뿐이다. 현대자동차는 도요타를 극복하고 KBS는 NHK보다 나아져야 하며 한국민주주의는 아시아의 선도국이 돼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일본을 미워하지는 않는다. 선의는 아니지만 끊임없이 우리의 에너지를 결집시켜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