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털리 우드
1981년 내털리 우드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된 2011년, 그녀의 동생이자 여배우인 라나 우드는 언니에 대한 책을 한 권 낸다. 사실 이 책이 나오기 전에도 이야기는 떠돌았다. 내털리 우드가 18살 때 할리우드의 톱클래스 남자배우에게 성폭력을 당했고, 이 일은 그녀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였다는 이야기다. 라나 우드의 책에도 이 부분이 언급되어 있었는데, 구체적으로 누군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커크 더글러스 아니겠느냐고 추정하기 시작했다. 마이클 더글러스의 아버지이자 할리우드 고전 시기 마초 스타 중 한 명이었던 커크 더글러스는 내털리 우드보다 22세나 많은, 1950년대에 전성기를 구가하던 배우. 하지만 그 진위는 알 수 없었다.
1년 후인 2012년, 어느 블로그는 논란의 도화선이 되었다. ‘크레이지 데이 앤 나이트’라는 블로그로, 그곳에 글을 쓰는 ‘힘’(Himmmm)이라는 필자가 있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네 명이 공유하는 계정이라는 ‘힘’은 자신이 업계 내부자라며 아주 상세한 이야기를 올려놓았다. 첫 타깃은 라이언 오닐이었다. ‘힘’은 할리우드에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나누고 임신하면 낙태를 강요하는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있다며, 그 중 한 명이 ‘러브 스토리’(1970)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라이언 오닐이라고 언급했다.
이후 ‘힘’은 세 번에 걸쳐 내털리 우드에 대한 글을 포스팅했다.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다. 아역 출신으로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소녀 가장’ 역할을 하던 내털리 우드는 배역을 따내기 위해 1950년대에 어느 노감독과 관계를 맺은 적이 있었다. 이 일이 소문이 나자 할리우드의 몇몇 남자 배우들이 추파를 던졌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커크 더글러스였다. 당시 파워맨 중 한 명이었던 더글러스는 자신이 출연할 영화의 배역 얘기를 하자며 내털리 우드를 호텔 방으로 불렀다. 우드가 도착했을 때 이미 취해 있던 더글러스는 노골적으로 섹스를 요구했고, 우드가 거절하자 완력을 이용해 강제로 옷을 벗긴 후 강간했고 얼굴에 멍이 생길 정도로 폭력을 휘둘렀다. 이 일은 우드의 정신과 육체에 모두 큰 상처를 남겼다. 당시 스튜디오 간부들도 그 사실을 알았지만 더글러스의 인기 때문에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했고, 우드 역시 발설할 수 없었다. 가족과 절친 몇 명만 그 사실을 알 정도였다.
커크 더글러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 블로거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라는 루머가 돌기 시작했다. 블로거 ‘힘’의 포스팅엔 자신이 1990년대 말에 내털리 우드의 딸 나타샤와 함께 일한 적이 있다고 했는데, 다우니 주니어와 나타샤 와그너는 ‘투 걸스’(1997)에서 공연한 적이 있었던 것. 게다가 ‘힘’은 커크 더글러스에 앞서 라이언 오닐에 대해 언급했는데, 다우니 주니어는 오닐과 ‘알렉스 두 번 죽다’(1980)에서 함께 연기한 적이 있었다. 네티즌 수사대들은 이런 교집합을 통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지목했던 것. 다우니 주니어는 함께 영화를 찍으며 나타샤 와그너와 친해져 그녀의 슬픈 가족사를 들었고, 시간이 흘러 라나 우드의 책이 나오자 이젠 공개할 때라고 생각해 익명의 블로거를 가장해 글을 올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라이언 오닐의 악행도 함께 까발렸다는 것이 사람들의 주장이었다.
처음엔 작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진 루머 정도로 여겨졌지만 사태는 점점 심각해졌고, 급기야 다우니 주니어의 대변인은 “다우니 주니어가 쓴 글이 아니다”라는 공식 논평을 내야 했다. 하지만 더글러스의 우드 폭행설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고,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 오랜만에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여론은 비난으로 들끓었다. 커크 더글러스 측은 아직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태. 한편 내털리 우드의 유족인 동생 라나 우드와 딸 나타샤 와그너는, 가해자가 세상을 뜨면 그의 이름을 공개하겠다며 “아직 그는 살아 있다”고 말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