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언론인 | ||
‘`삐삐’라는 호출기를 차고 다니던 것이 불과 10여년 전의 일이다. ‘삐삐’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그것은 첨단기술이 만들어 낸 문명의 이기였다. 외근을 하는 직장인들은 높은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신호를 보내서 업무의 진도를 파악하고 새로운 지시를 하는 바람에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다보니 그 ‘삐삐’는 야생동물 보호구역 안에 있는 반달곰이 차고 있는 전자 칩과 다를 게 없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호출기가 휴대전화로 바뀌었다는 것뿐이다.
정보통신산업의 눈부신 발전은 중국의 경우를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1989년 6월, 천안문(天安門)사태가 일어났을 때 중국 전역에는 겨우 3만 대의 팩시밀리가 있었고 수도 베이징에 있는 유선전화는 3백만 대가 있었다고 한다. 이 숫자는 당시 미국의 버클리와 스탠퍼드의 학생들이 엄격한 언론통제망을 뚫고 중국에 팩시밀리로 천안문사태에 대한 최신뉴스를 공급하면서 밝혀졌다.
그 중국에 지금 3억3천4백 만대의 휴대전화가 보급되어 있다(2004년말 현재). 지난 2월의 춘절(설) 연휴기간 7일 동안 휴대전화를 통해 발신된 문자메시지가 1백억 통을 넘었다는 통계도 있었다. 하기야 중국은 워낙 국토가 넓어서 나라 전체에 통신 케이블을 매설하기보다는 통신위성을 이용한 휴대전화 공급이 오히려 경제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래서인지 상하이나 베이징 등지를 여행하다 보면 서너 명에 한 사람 꼴로 휴대전화를 갖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중국이든 대한민국이든 정보통신산업이 발달되어 ?백성들이 쓰기에 편하게’ 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같은 정보통신산업의 비약적인 발달이 이젠 개인의 사생활에 무차별적으로 침범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용카드회사에서 회원들이 오늘 어디서 무엇을 얼마에 구입했는지를 훤하게 꿰뚫고 있듯이 앞으로는 누구나 자신이 알고 싶어하는 사람의 정보를 손금 들여다보듯 하는 세상이 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런 세상이 오면 요즘 한창 시끄러운 X-파일인가 뭔가 하는 도청사건이 웃음거리가 되는 세상도 멀지 않았다. 현장에 도청장치를 설치해 놓고 옆방에서 대화내용을 엿듣는 전근대적인 정보수집 기법이 곧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해킹 소프트웨어 설치로 남의 전자우편을 들여다 보거나 복제한 휴대전화로 남의 휴대전화 통화내용을 간단하게 도청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국가 정보기관이 도청을 주도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우리는 이미 조지 오웰이 <1984>를 통해 예언한 빅 브라더가 백성의 사생활은 물론 의식구조까지 지배하는 유리상자속에서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받으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