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수원대 교수 | ||
세상은 점점 좋아진다고 호들갑인데 피부로는 점점 더 악착같아진다고 느끼게 되는 건 팔자 좋은 자의 투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악착같은 세상에서는 안간힘을 쓸수록 깊은 수렁을 만납니다. 차라리 힘을 빼야 합니다. 욕심도 내려놓고, 분노도 내려놓고, 고독이 무섭지 않고 친구가 될 때까지! 그런데 희망으로 포장된 내 욕심을, 절망으로 연민을 얻고 있는 내 집착을, 내 번뇌를, 내 이기심을, 그리고 어찌하기 힘든 나의 자기사랑을 어디까지 놓아버릴 수 있을까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적은 바로 자기자신인데 말입니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해 짊어지지 않아도 좋을 짐을 지고 헉헉거릴 때 나는 산으로 갑니다. 걷다 보면 버릴 힘이 생기고, 걷다 보면 홀가분해집니다. 그 산마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아름다워 보이는 절이 있습니다. 정신없는 욕망의 나라에서 젊음도 버리고 가족도 버리고 사랑도 버림으로써, 기를 쓰고 사는 무리에서 퉁겨 나와 마침내 자기자신을 버리기 위해 스님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질기고 질긴 삶이지만 그게 전부가 아닐 거라고 믿게 만드는 그곳은 대부분은 쉬어가라고 손짓하는 것 같은 편하고 친숙한 공간입니다. 그런데 그곳 봉암사는 편하지도, 친숙하지도 않았습니다. 편안하기보다는 엄숙하고 넉넉하기보다는 정적이 흐르는 곳입니다.
백두대간의 단전자리인 봉암사는 태양의 세례 속에서 휘황찬란해지는 희양산의 정기를 받고 있는 선원입니다. 외딴 산천은 별천지지만 시끌벅적 자유롭게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배겨내기 어려운 어떤 기운이 흐르고 있습니다. 얘, 한 순간도 편하지 않은 곳이구나, 여기는 이렇게 다닐 곳이 아니라 봉쇄수도원처럼 저런 곳이 있구나, 하고 전설처럼 남겨둬야 할 곳이구나, 우연한 인연으로 하룻밤을 주무신 내 어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신 곳입니다.
그곳 희양산에 대해, 괴산군이, 개방 요청을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괴산군 쪽에서 등반하는 사람들이 문경 봉암사 소유의 희양산 쪽으로도 내려올 수 있도록. 이미 불교 조계종은 2천5백여 사찰이 있는 산을 모두 개방했습니다. 다만 특별수도원으로 지정된 봉암사만은 선불교의 엄격한 선맥을 잇는 치열한 선방으로 유지하고자 한 것입니다. 근래에는 성철 스님의 봉암사 결사로 불교계의 성지처럼 되어버린 희양산 봉암사는 줄곧 화두의 바랑을 메고 끊임없이 자기와 싸우는 선사들의 고독한 선방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도 아깝지 않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증거해온 그곳은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세상의 질서 바깥에서 세상을 받치고 있는 보이지 않은 힘으로 남겨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