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5월 26일 오후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2차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시가 게재된 곳은 주간지로 발행되는 북한의 대외용 선전매체 ‘통일신보’다. 이 시들은 ‘통일신보’와 함께 역시 북한의 대외용 온라인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 홈페이지에 5월 25일에 동시 게재됐다.
매체 최신호에는 총 다섯 편의 정형시와 한 편의 서사시가 게재됐다. 시의 주요 내용은 역시 남북정상회담 성사와 여기서 도출된 ‘판문점선언’을 꾀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찬양이다.
각각의 시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묵직한 의미를 부여하는 한편, 그 과정에서 벌어진 다양한 행태에 대해서도 자세히 묘사한 것이 눈에 띄었다.
북한의 대외용 선전매체 ‘통일신보’와 ‘우리민족끼리’에 게재된 찬양시 일부. 사진=우리민족끼리 홈페이지
가장 먼저 게재된 시는 김태룡 작가의 ‘판문점의 신호총성’이다. 김 작가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두고 ‘대범한 용단 무비의 담대함을/크나큰 가슴에 지니신 원수님/삼천리를 진감시킨 신호탄으로/통일번영의 대로에 온 민족을 내세우신/력사의 위대한 선구자이시여’라고 찬양하며 ‘판문점에 오른 그 장엄한 신호탄/이는 우리 민족 가슴가슴에/끝없이 터져오르는 경탄과 찬탄/삼천리 이 강토우에/통일의 만세로 터져오를 환희의 축포탄이다’라고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을 각각의 ‘신호총성’ 운율에 맞춰 묘사했다.
김송림 작가는 ‘통일의 종착점을 향하여’라는 시를 통해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 당시 방명록에 남긴 ‘친필 서명’을 찬양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김송림 작가는 독특하게도 ‘통일의 종착점을 향하여’라는 시를 통해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 당시 방명록에 남긴 ‘친필 서명’을 찬양했다. 북한에선 과거부터 최고지도자 ‘글귀’ 하나하나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신격화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김 위원장의 당시 친필에 대해 ‘장엄한 새 역사의 서막을/그이는 일필휘지 친필로 여시였다/방명록에 남기신 불멸의 글발/새로운 역사는 이제부터’라면서 ‘통일을 불러 재가 앉은/겨레의 가슴가슴에/감격으로 안아보는 희망의 글발…비극과 고통의 어두운 장막 밀어내며/광명한 미래를 펼치여준 환희의 글발…거룩하신 위용 담대한 기상이 비껴/살아 맥동치는 위인의 글발이여…’라고 글귀 자체를 신격화했다.
남북 정상의 산책은 4.27 남북정상회담의 최고의 한 장면으로 꼽힌다. 리송일 작가는 이를 시에 담았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그런가하면 리송일 작가는 지난 남북정상회담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남북정상의 산책길을 시 한 편에 담기도 했다. 주의 깊게 봐야할 것은 두 정상이 함께한 산책길이었지만, 리 작가는 오로지 김정은 위원장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사실이다. 다음은 그의 시 ‘통일삼천리를 걸으셨습니다’의 일부 내용이다.
‘오늘도 가슴뭉클 따라섭니다/분렬의 난바다를 헤쳐가시듯/우리 원수님 걸으셨던/판문점의 산책길…(중략)…아, 산책길은 길지 않았어도/북과 남의 온 겨레 보듬어/우리 원수님/통일조국을 수놓으신 길입니다//온 강토 온 겨레가 환호하며/걸음걸음 그이를 따라서던/4월 27일/원수님은 8천만겨레와 함께/통일삼천리를 걸으시였습니다!(끝)’
우리 측 제안으로 이뤄졌던 남북정상 기념식수 이벤트 역시 북한 작가들의 ‘시감’이 됐다. 김윤식 작가의 ‘봄빛 넘치는 판문점’이란 시가 대표적이다. 이 시 역시 남북 정상의 공동행사였음에도 정작 시에 등장하는 이는 김정은 위원장이 전부다. 애초 이 행사를 문재인 대통령이 기획 및 제안했음에도 말이다. 특히 김윤식 작가는 김 위원장이 덮은 흙과 뿌린 물에 대해 각각 ‘혈육의 정’ ‘평화번영의 생명수’로 묘사해 눈길을 끌었다. 다음은 그 시의 일부다.
김윤식 작가는 남북정상 기념식수 장면을 시에 담기도 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중략)…그날에 포근히 덮어주신 흙은/남녘겨레에게 주시고 싶었던/혈육의 진한 정이였다/부어주시던 그 물은/평화번영의 삼천리 꽃피우시는 생명수였다/심으신 것은 한그루 소나무였어도/그이 겨레의 가슴가슴에/통일에 살아 꿋꿋할 기상/억척의 기둥으로 세우신 것이거니/푸르른 소나무 설레이는 판문점/아, 봄빛 넘치는 판문점이여(끝)’
김련옥 작가는 ‘판문점의 봄은 위대한 태양을 노래한다’라는 제목의 서사시를 게재했다. 이 서사시는 총 세 개의 장으로 이뤄졌다. 과거 김정은 위원장이 몇 차례 판문점을 다녀갔던 일화,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의미, 그 과정에서 김 위원장에 대한 찬양 등을 장문의 시로 묶어내 눈길을 끌었다.
이미 북한은 자국 매체를 통해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선언에 대한 보도는 물론 반복적으로 기록영화를 방영하는 등 대대적인 선전활동을 꾀하고 있다. 물론 그 모든 대목 대목마다 최고지도자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찬양이 담겨 있다.
기자가 우회경로를 통해 입수한 ‘통일신보’에 게재된 시들 역시 그 연장선으로 보인다. 역시 아쉬운 점은 상당한 분량의 선전시가 게재됐지만, 그 어느 대목에도 우리 정부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언급은 단 한 줄도 없다는 점이다. 모든 초점은 오로지 김정은 위원장의 성과와 행보에 맞춰져 있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