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경 이화여대 교수 | ||
간단히 말하면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다. 미국뿐 아니라 서양의 대부분 나라들은 정치지도자들과 공직자들의 거짓말에 대해서 매우 준엄한 징벌을 가한다. 공적인 발언이 거짓말로 판명될 경우, 당사자의 정치생명 또는 공직생활은 끝나는 것으로 보면 정확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워터게이트 사건이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도청 공작을 지시했기 때문에 사임하는 치욕을 겪은 게 아니다. 미 의회가 그를 탄핵했던 핵심 이유는 그가 그러한 공작을 모르고 있었다고 되풀이해 증언한 내용이 거짓으로 판명됐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치현실은 어떤가. 몇 주째 나라를 흔드는 X파일 사태를 보며 한국 민주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토대가 얼마나 부실한가를 뼈저리게 확인한다. 되풀이할 필요없이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인 정치제도다.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 정치지도자들은 그들을 뽑아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공복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공직에 취임하며 선서를 통해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국민을 위한 노력 속에 거짓말이 포함될 수 없음은 강조할 필요가 없다.
이번 X파일 사태는 한국 정치지도자들의 공적 발언들이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포함하고 있는지를 드러내줬다. 조금 과장하면 정치지도자들의 거짓말이 일상화된 것은 아닌지를 의심하게 한다. 국가정보원장들은 국회에서 증언을 하거나 기자들과 간담회를 하거나를 불문하고 도청을 하지 않았다거나 휴대전화를 도청할 기술이 없다고 말했다. 국민을 상대로 대놓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국정홍보처는 막대한 광고비를 써가며 국민들에게 안심하고 휴대전화를 사용하라고 했다. 이는 정부 전부처가 공식적으로 국민을 속인 행위였다.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서는 대통령 비서실장들과 수석비서관들이 모두 거짓말쟁이로 드러났다. 되풀이된 기자들과 의원들의 질문에 단돈 1달러도 회담의 대가로 지불한 사실이 없다고 일관되게 증언했었기 때문이다.
국민이 내는 세금을 물처럼 써대며 주인을 속이는 정치문화가 체질이 돼서는 민주화가 더 이상 진전할 수 없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거짓말하고 국정원장의 증언과 국정홍보처의 발표가 거짓말이라면 국민이 그러한 정부에 어떻게 신뢰를 보낼 것인가. 거짓말 정치문화가 지속되는 데는 언론의 책임도 크다. 결국 그들의 말을 국민에게 전달하는 것은 기자들이기 때문이다. 역시 중요한 것은 사실을 검증하는 능력이다. 이번 기회에 신문과 방송은 그동안의 거짓말 중계인 역할에 대해 철저히 반성할 필요가 있다. 그와 동시에 거짓말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집요한 추적보도를 일상화해야 한다. 거짓말 정치인을 퇴출하는 장치가 없으면 민주주의는 그들을 위한 잔치가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