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언론인 | ||
외과의사 이인국 박사. <꺼삐딴 리>의 주인공이다. 평소 퇴근하면 다다미방에서 ‘유가다’ 바람으로 일본말을 쓰며 살던 이인국은 일제가 패망하자 `국어(일본어) 상용의 집’이라는 액자를 떼어내는 것으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한다. 광복 후 소련 점령치하에서 치안대에 끌려가자 그는 재빨리 뜨내기 러시아어 몇마디를 익혀 소련군 장교의 얼굴에 난 혹을 수술해 주고 아들을 모스크바로 유학 보내는 행운을 누린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1·4후퇴 때 청진기가 든 손가방 하나만 들고 월남한 이인국은 병원을 차리고 몇 년 만에 종합병원 원장이 된다. 그리고 영어회화를 배우고 미국 대사관 요인들에게 고려청자를 선물해서 미 국무성 초청을 받고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이때 이인국은 자신의 탁월한 처세술에 새삼 자부심을 느낀다. “흥, 그 사마귀 같은 일본놈들 틈에서도 살았고, 닥싸귀 같은 로스케 속에서도 살아 났는데 양키라고 다를까…. 혁명이 일겠으면 일고 나라가 바뀌겠으면 바뀌고 아직 이 이인국의 살 길은 막히지 않았다.”
<꺼삐딴 리>가 발표된 것은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난 그 이듬해였다. 이 작품이 발표되자마자 독자들의 큰 반응을 얻었던 것은 당시의 우리 세태와도 무관하지 않다. 이른바 군사혁명이 일어났다는데도 우리 사회를 쥐고 흔드는 세력들은 여전히 일제강점기와 자유당 정권과 민주당 정부를 거치면서 현직(顯職)에 있었던 인물들이었다. 그런 인물들이 혁명을 했다는 군사정권 밑에서도 여전히 떵떵거리던 당시의 세태를 극명하게 그려낸 작품이 바로 <꺼삐딴 리>였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꺼삐딴 리>는 비단 이인국 한 사람만의 얘기가 아니다. 이인국은 어쩌면 현대사의 격랑을 헤치며 살아온 우리 시대의 평균적인 한국인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잦은 정치적 사회적 격변 속에서 목숨이라도 부지하자면 시류에 편승해야 했고 그러다보니 그 난세에 입신양명했거나 고관대작에 올랐다는 인물들이 걸어 온 삶의 궤적(軌跡)속에는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이인국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우리 시대의 수많은 ‘꺼삐딴 리’들은 마치 떨어져야할 때가 되었는데도 떨어지지 않는 꽃처럼 물러날 때를 모른다는 점이다. 세월이 흐르고 무대가 바뀌었는데도 무대위에 왔다 갔다 하는 등장인물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다면 관객들은 그 연극에 흥미를 잃을 것이 뻔하다. 일제 식민통치로부터 풀려난 지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과거사 청산이 시대적 명제로 남아있다는 것은 지금까지 인적청산을 포함, 과거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과거사 청산을 비웃기라도 하듯 어깨에 힘주고 활보하는 수많은 ‘꺼삐딴 리’들의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