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거돈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가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경쟁자인 서병수 전 시장에게 한 말이다. 이 공격적이고 저돌적인 발언을 영상을 통해 가볍고 유쾌한 농담으로 소화됐다. 남경필 자유한국당 경기도지사 후보는 ‘먹방’과 ‘ASMR’이라고 하는 콘텐츠를 통해, 김문수 한국당 서울시장 후보는 때아닌 ‘진지 철봉’으로 유권자들에게 웃음을 주고 있다. 공약·정책 홍보영상보다 유권자들에게 웃음을 주는 홍보영상이 오히려 더 주목을 받고 있다.
과거 정책·홍보영상은 한 물 간 지 오래다. 이번 6·13 지방선거에는 후보들의 개인기를 내세운 영상이 등장하며 젊은 유권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사진=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성남시장을 방문해 ‘먹방’을 선보이고 있다. 유튜브 ‘남경필 공식채널’ 영상 캡처.
동영상 공유사이트인 유튜브 채널 중 ‘남경필 공식채널’에는 남 후보의 토론회, 토크쇼, 홍보영상 등이 올라와 있다. 선거를 앞둔 일반적인 후보의 SNS 홍보 동영상 같지만, 이들 중 눈길을 끄는 영상은 따로 있다. ‘먹는 것도 리듬을 탄다! 바삭한 ASMR’이라는 제목의 영상이다.
‘ASMR’이란 자율감각 쾌락반응(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을 줄인 말로 최근 유튜브를 중심으로 확산된 콘텐츠다. 예를 들어 후라이드 치킨을 먹을 때 나는 ‘바삭 바삭’ 소리를 있는 그대로 들려주면 듣는 이가 대리만족을 한다. 남 후보 캠프는 젊은 유권자에 어필하기 위해 ASMR 콘텐츠를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38초의 이 짧은 영상은 남 후보가 성남시장에 선거운동을 가서 음식을 먹으며 상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담고 있다. 주로 그가 음식을 먹는 순간을 강조해 편집하고 경쾌한 느낌의 ‘투우사의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넣었다. 핫도그와 콩국수를 먹으며 시장 상인들과 소통하는 남 후보의 모습을 잘 담고 있다. 사실 영상에는 별다른 내용이 없다. 남 후보의 발언이라곤 “(핫도그가) 진짜 바삭바삭하다”, “음~”이 전부다. 38초 내내 먹는 모습이다. 영상을 보고난 뒤 남는 것은 남 후보의 인간적인 모습이다.
비슷한 영상인 ‘안양중앙시장 먹방’ 영상에서도 남 후보는 호떡, 떡볶이, 오뎅을 먹기만 한다. 그러면서 그는 “시장 음식들이 진짜 맛있다. 원래 옛날부터 선거운동하러 다닐 때 인사하러 다니는 게 아니라 사고, 먹고 그러면서 즐기면서 하는 거다”라고 말한다.
남 후보는 이 영상들을 접하고 난 뒤 굉장히 만족했다는 후문이 있다. 남경필 후보 캠프에서 영상 제작을 담당하는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남 후보가 영상을 보고 ‘빵’ 터지며 굉장히 만족해 했다. 앞으로 계속 영상을 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자기자랑만 하는 정치인들은 꼴보기 싫지 않느냐. 그래서 남 후보 영상에서는 ‘셀프 디스’를 강조했다”면서 “남 후보 이미지는 색채가 없는 편인데, 실제 남 후보는 소탈하다. 드러나지 않은 남 후보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이런 콘셉트의 영상을 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오거돈 부산시장 후보도 최근 맥락 없는 홍보 영상을 공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SNS에 올라온 오 후보의 영상은 선거캠프 직원과 오 후보의 대화로 진행된다. 직원이 오 후보에게 ‘서병수 현 부산시장에게 하고 싶은 말 있냐’고 묻자 오 후보는 “You are fired!(넌 해고야)”라고 대뜸 고함을 지른다. 이어 ‘태어나서 가장 많이 울었던 경험’을 묻는 질문에 오 후보는 “초등학교 시절에 내일 비가 오거돈 소풍을 안 간다는 규정이 있었어요. 우리 친구들이 내 뒤를 줄렁줄렁 따라댕기면서 ‘오거도이~ 가거더이~’ 그러면서 계속 놀리고 댕겨서 대단히 울었어요”라며 자신의 과거를 털어 놓는다.
이 영상에도 별다른 내용은 없다. 하지만 평소 정치인들이 보이는 딱딱하고 권위주의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농담을 던지는 유쾌한 모습이 유권자들에게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간다. 물론 이를 접한 일부 네티즌들은 “이런 나잇값 못하는 사람을 뽑으면 부산 망한다. 제발 이제는 능력 보고 뽑아라”라고 쓴소리를 내뱉기도 하지만, 대부분 “매력있다”, “웃기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오 후보 캠프 측은 영상에 대해 “캠프는 2030팀과 4560팀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 영상은 2030팀의 대학생들이 제작한 것”이라며 “지나가던 오 후보에게 사전 섭외도 없이 촬영 설명을 드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촬영했다. 촬영도 편집도 청년들이 다 했는데, 이호철 전 민정수석의 ‘청년들이 하는 것에는 어떠한 간섭도 하지 말라’는 말에 따라 자유롭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사진=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가 선거운동 도중 공원에서 철봉에 매달려 있다. 사진= 유튜브 ‘김문수TV’ 영상 캡처.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는 유권자들에게 의도치 않은 웃음을 주고 있다. 유튜브 채널 ‘김문수TV’에 게시된 영상들 중 ‘김문수의 철봉 실력은?’이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김 후보는 공원으로 보이는 장소에서 주구장창 철봉만 타고 있다.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손을 뻗어 손가락으로 브이(V)를 그리기도 하고,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리며 “사랑합니다아”라고 말하기도 한다. 휴대전화와 넥타이가 거꾸로 떨어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철봉 삼매경이다.
그는 철봉에서 내려와 어깨돌리기, 허리돌리기 등의 운동기구를 이용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운동기구에 몸을 맡긴 채 “아이고 좋네”라는 짧은 말만 할 뿐이다. 이 영상의 ‘웃음 지뢰’는 김 후보의 진지함이다. 웃기기 위해 농담을 하거나 몸개그를 하지 않는다. 묵묵하게 최선을 다해 자신의 개인기를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모습이 본의 아니게 웃음을 자아낸 것이다.
이와 비슷한 영상으로는 ‘김문수의 양꼬치 끼우는 실력’이 있다. 이 영상에서 김 후보는 묵묵하게 꼬치에 고기를 꽂기만 한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뜬금없이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며 세 번째, 네 번째 손가락을 접어 사랑을 뜻하는 손가락 제스처를 취하기도 하고, 수화로 ‘사랑한다’는 말도 한다. “일당 줄 게 없다. 그만하라”는 직원의 농담에 김 후보는 “일당 좀 달라”며 맞받아친다.
김문수 후보 캠프에서 영상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관계자는 “김 후보는 평소에 건강관리로 철봉을 하고, 철봉을 좋아한다. (이날도) 쉬는 시간에 철봉을 보시더니 갑자기 철봉을 타시더라. 그걸 보고 (캠프 관계자들이) 영상을 찍자고 해서 만들게 됐다”며 “어린이집에 (선거운동을) 가다가 철봉이 보이면 자연스레 철봉에 매달리던데, 웃기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주변의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관계자는 “(김 후보는) 억지 연출을 별로 안 좋아하고 카메라를 들이대면 경직되는 스타일이다. 때문에 웃음을 만들어내기가 힘든데, (철봉영상 덕분에) 가볍고 젊은 느낌을 이끌어냈다”며 “자원봉사에서도 보통 정치인들은 쇼만 하고 오는데, 김 후보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을 다 해버렸다. 때문에 영상 연출이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