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이 조명되고 있는 가운데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사진관 직원이 고객을 불법촬영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이 사진사가 불법촬영한 사람만 215명. 사진 촬영을 직업으로 하는 사진사 역시 몰카범일 수 있다는 사실에 여성들은 분노를 넘어 두렵다는 반응이다. 이 와중에 경찰이 범인에 대해 신청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사실이 알려지며 ‘홍대 몰카 사건과 너무 비교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사진관의 직원이 여성 고객의 치마 속을 몰래 촬영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혜리 기자
경찰 관계자는 “A 씨가 불법 촬영한 여성들만 215명이고 이 가운데 75명의 이름을 밝혀냈다. 일부 언론에 보도된 것과 달리 사진관 내부에 몰래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지는 않았다”며 “215명 중 30명에게 피해진술을 받은 결과 15회 정도의 추행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A 씨도 범행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치마를 입은 여성이 주로 범행의 표적이 됐다. 고객들이 사진 원본 파일을 받기 위해 컴퓨터 화면 쪽으로 허리를 숙여 이메일 주소를 적는 동안 A 씨는 뒤쪽으로 손을 뻗어 치마 속을 몰래 촬영하곤 했다. A 씨는 이외에도 몇 가지 수법을 통해 불법촬영을 해 온 것으로 알려진다. 아직 촬영된 사진이 유출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A 씨의 개인 디지털 기기도 확인해봤지만 아직 유출 흔적은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규모 불법촬영 범죄가 발생한 ㄱ 사진관은 가격이 저렴한 데다 대학교와 근접해있어 근방에서는 유명한 곳이다. 수개월 전 이곳에서 사진을 촬영한 적이 있다는 한 여성은 “기본 가격이 5000원도 안되는 데다 여러 옵션을 추가해도 상당히 저렴해서 이 주변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며 “다른 곳도 아니고 사진관에서 몰카가 찍힐 수 있다는 건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라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ㄱ 사진관 대표와 직원들도 충격에 빠졌다. 5월 28일 방문한 ㄱ 사진관 문 앞에는 ‘사과문’이라는 제목의 인쇄물이 부착되어 있었다. 전날 부착했다는 사과문에는 “문제를 일으킨 직원은 즉시 해고 처리하였습니다. 직원관리를 잘하지 못한 저의 책임이 매우 큽니다”라며 “피해자분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사건 발생 이후 매장 안전관리와 직원의 윤리교육에 더욱 힘쓰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분골쇄신하는 마음으로 매장운영에 주의를 기울이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새로 고용된 직원 B 씨는 “사과문은 5월 27일에 게시했다. 대표님은 주로 여기가 아닌 인근에서 운영하는 다른 사진관으로 출근하시기 때문에 사건을 파악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의 처리 과정이 ‘홍대 누드모델 몰카’ 사건과 비교해 너무 차이가 난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건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경찰은 이번 사건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결국 기각된 것으로 확인된다. 반면 홍대 몰카 사건의 경우 사건이 발생한 지 2주도 채 되지 않아 법원이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피의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실제로 홍대 몰카 사건의 피의자는 조사 과정에서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며 증거 인멸을 위해 거짓진술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법원이 불법촬영 사건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한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5월 29일 ㄱ 대학교 게시판에는 ‘사진관 몰카충 XX 최초 신고자입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홍대 크로키 사건의 구속영장이 일주일 만에 발부되고 이틀 정도 뒤에 (A 씨의) 불구속 연락을 받았다. 석 달을 기다렸다. 저 말고도 60~70명 정도 벗들을 수사관에게 연결해 피해자 규모가 꽤 크겠다고 예상은 했지만, 200명이 넘는지는 몰랐다. 그런데 불구속 처리됐다. 게다가 기소 여부까지 불투명하다”며 “이 사건이 불법촬영 여남편파 수사의 확실한 증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에 대해 경찰은 설명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다. 다만 경찰은 A 씨가 범행 대부분을 인정했다는 점이 고려되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피해 규모를 고려해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에서 기각했다. 구속영장 발부는 경찰의 권한이 아니다”라면서 “영장 발부는 도주할 가능성이 있는가, 증거를 없앨 가능성이 있는가가 관건인데 두 가지 모두 워낙 주관적 판단이 개입되는 요소다. 이 사람이 도주할지는 신만 아는 것 아닌가”라고 털어놨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