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전경. 사진 고성준 기자.
사업가 노 아무개 씨는 지난 2015년 6월 1000억 원대 추모공원 운영권 다툼과정에서 용역깡패를 동원한 경쟁 인사들에게 운영권을 강탈당했다. 운영권을 회복하기 위한 방안을 찾던 노 씨는 2015년 7월경 A 전 검찰총장(당시 대검 간부)과 친하다는 박 아무개 씨를 소개받았다.
노 씨의 주장에 따르면 박 씨는 A 전 총장을 통해 경쟁 인사들을 모두 구속시키고 운영권을 되찾게 해주겠다면서 활동비와 접대비 명목으로 2억 4000만 원을 달라고 제안했다. 또 사건이 해결될 경우에는 성공보수로 3억 원을 달라고 했다. 노 씨는 박 씨의 제안에 따라 우선 현금 5000만 원을 박카스 박스에 5만 원권으로 담아 전달했다.
노 씨는 “박 씨가 A 전 총장이 곧 검찰총장이 될 거라고 말했다. 식사를 같이 했다는 등 A 전 총장과의 친분을 여러 차례 과시했다”면서 “박 씨는 3억 원이 넘는 외제차를 타고 다녔고 번듯한 사업장도 있었다. 박 씨는 ‘A 전 총장에게 부탁해 해결한 일이 많다’고 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돈을 건넸다”고 말했다. A 전 총장은 얼마 후 검찰총장이 됐다.
돈을 건네자 검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쟁 인사들에 대한 고소장도 제출하지 않았는데도 서울중앙지검이 관련 수사를 하겠다면서 노 씨를 비롯한 피해자들을 소환한 것이다.
노 씨는 “서울중앙지검에 갔더니 이미 사건 내용에 대해 다 알고 있더라. 조사를 받으면서 ‘빽이 좋긴 좋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노 씨는 두 번이나 서울중앙지검에 가서 피해사실에 대한 진술을 했다.
노 씨는 “5000만 원을 준 후 곧바로 검찰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박 씨의 말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후 모두 5차례에 걸쳐 총 2억 4000만 원을 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쟁 인사들을 곧 구속시킬 것이라는 박 씨의 말과 다르게 사건은 더이상의 진척이 없었다.
노 씨가 여러 차례 재촉하자 2015년 8월 경 박 씨는 갑자기 B 변호사가 이번 사건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 씨는 “A 전 총장이 직접 사건을 해결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박 씨가 뜬금없이 B 변호사를 언급하는 것을 보고 사기를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돈을 건넨 상태여서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박 씨는 B 변호사 역시 A 전 총장과 절친한 사이라고 했다.
박 씨는 노 씨에게 받은 2억 4000만 원 중 2억 2000만 원을 B 변호사에게 넘겼다. 노 씨와 B 변호사가 정식 선임계약을 맺은 것은 2015년 10월경이다. 이후에도 사건은 진전이 없었다. 노 씨가 사건해결을 재촉하자 B 변호사는 정식 선임계약을 맺은 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2억 2000만 원 중 4000만 원은 변호사 비용이라고 주장하며 제하고 나머지 돈을 반환했다.
노 씨는 ‘검찰총장과의 친분을 내세우며 사건해결을 미끼로 거액을 편취하려 했다’면서 지난 2017년 1월 박 씨를 고소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박 씨는 “A 전 총장을 통해 사건을 해결해준다고 말한 적이 없다. 단순히 B 변호사와 노 씨를 연결해주려 한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박 씨는 이후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고 답변을 거부했다.
B 변호사는 “내가 A 전 총장과 친분이 있는 것은 맞다”고 인정하면서도 “A 전 총장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려 한 적이 없다“ 부인했다. 그에 따르면 ”박 씨는 A 전 총장과 안면이 있는 정도일 뿐 무슨 청탁을 할 정도로 친한 사이가 아니다”는 것이다.
B 변호사는 자신은 노 씨와 정상적인 변호사 선임계약을 맺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 씨가 박 씨에게 전달한 돈도 처음부터 변호사비 명목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지점에서 양측의 주장은 엇갈린다, 노 씨는 박 씨가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자 뒤늦게 B 변호사를 소개해줬다고 주장하고 있고, B 변호사는 사정상 선임계약은 늦게 맺었지만 2015년 6월경부터 사건을 맡고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B 변호사는 “노 씨는 저를 2015년 8월경에 처음 만났다고 주장했는데 2015년 6월경 저랑 통화한 내역이 발견됐다”면서 “노 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평범한 변호사 선임 계약이었다면 노 씨가 왜 굳이 A 전 총장을 끌어들여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사건 해결이 잘 안되니까 언론플레이로 이슈화시켜 보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추측했다.
B 변호사는 노 씨의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당시 검찰이 수사에 나선 것에 대해서는 “A 전 총장이 지시한 것이 아니라 내가 평소 친분이 있는 검찰 관계자에게 자료를 전달했다. 고소를 해도 되지만 인지수사를 해서 사건을 해결하면 실적이 되니까 실적 쌓으라고 자료를 전달한 것이다. 그런데 검찰에서도 사건이 안 된다고 해서 무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사비를 현금으로 받은 이유에 대해서는 “사건이 안 되면 수임료를 바로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현금으로 하지 않으면 세금 문제 등이 복잡하니까 현금으로 달라고 한 것”이라고 했다.
반면 노 씨 측은 정상적인 변호사 선임비용이라면 굳이 박카스 박스에 담아 은밀하게 전달할 필요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 씨 측 관계자는 “처음에 돈을 계좌로 주겠다고 했더니 박 씨가 현금으로 달라고 했다. 그것도 돈을 세탁해서 달라고 했다. 그래서 지인들 통장에 돈을 넣고 다시 현금으로 인출하는 방식으로 돈을 세탁해서 박카스 박스에 담아 전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 씨는 “B 변호사 사무실은 부산에 있다. 그냥 일반적인 변호사 선임을 하려고 하면 가까운 서울에 있는 변호사를 선임하지 왜 굳이 부산에 있는 변호사를 선임하겠나.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B 변호사는 “박 씨가 돈을 세탁해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노 씨가 돈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채권자들에게 압류당할 수 있으니까 돈을 이리저리 돌린 것을 세탁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라며 “최초 5000만 원은 박카스 박스에 담아 보냈지만 나머지는 일반 종이가방에 담아 보냈다”고 주장했다.
노 씨 측은 5차례 모두 박카스 박스에 돈을 담아 보냈다고 반박했다. 노 씨 측 관계자는 “박카스 박스에 5만 원권으로 딱 5000만 원이 들어가더라. 1억 원을 전달할 때는 박카스 박스 2개에 담아 보냈다”며 구체적인 증언을 했다.
일요신문은 A 전 총장의 입장도 직접 들어보려 했으나 대검찰청 측은 “전직 총장의 수행원, 사무실 등의 연락처를 알지 못 한다”고 했다.
A 전 총장은 퇴임 후 변호사 개업도 하지 않아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A 전 총장과 친분이 있다는 B 변호사도 “이런 일로 A 전 총장에게 연락할 수는 없다. A 전 총장은 이번 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