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경 이화여대 교수 | ||
전교조의 교원평가제 반대투쟁과 교육인적자원부의 대응방식을 보며 갖는 생각이다.
1960년, 70년대만 해도 한국의 경쟁력은 교육에서 나왔다. 변변한 천연자원이 하나도 없는 대한민국이 중공업을 일으키고, IT산업에서 명함을 내밀게 된 원동력은 사람을 제대로 키워낸 교육의 몫이었다.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세상이 바뀌었다. 개인소득이 만달러를 넘었지만 한국 교육은 그에 걸맞은 변신에 실패했다.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 아닌 경우가 많아졌다. 초등학교가 그렇고 중고등학교도 다르지 않다. 시험을 위한 공부는 학교가 끝난 뒤 학원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해준다. 내신전쟁터가 된 학교에선 인성교육도 기대하기 어렵다.
여유가 있거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아이를 해외로 내보낸다. 한국 교육에 대한 신뢰상실의 증표다. 작년에 유학비용으로 해외로 빠져나간 돈이 24억달러가 넘었다. 사교육비가 GNP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2.3%에 달한다. 공교육 예산의 절반을 넘는다.
문제는 1980년대와 2000년대의 시차에 있다. 우리 교육제도와 교사들의 사고방식은 여전히 70~80년대에 머물러있는데 학생과 부모의 요구는 서구 선진국에 눈높이가 맞춰져 있다는 뜻이다.
돌아보면 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은 중진국 진입이 목표였다. 교육 또한 문맹의 퇴치와 기본적인 계산능력의 훈련에 집중했다. 고급기술의 연구개발이 아니라 조선이나 건설 등 중공업현장의 일꾼들을 양성하면 됐다. 그러나 개인소득 2만달러를 이루어내려면 80년대식 교육으로는 선진국들과 경쟁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1997년 말 밀어닥친 외환위기는 금융과 기업의 사고체계를 혁명적으로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 김대중 정부 5년은 통째로 우리의 경제체질을 혁신하는 기간이었다. 안타깝게도 교육부분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학생들은 목소리를 낼 능력이 없었고, 교육당국이나 교육자들은 현상유지가 편안했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언론사들의 이데올로기적 의제설정방식도 교육논의를 정체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평준화의 찬성과 반대 또는 평준화 체제의 폐지와 유지가 최고의 목표가 됐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교육현장은 무시됐다. 제도에 대한 논쟁을 30년 끌어오면서 교실은 지속적으로 황폐해졌고, 공교육에 대한 신뢰는 바닥에 떨어졌다.
지금 교육계를 달구고 있는 교원평가제 논란도 같은 길로 접어들었다. 한국 사회는 전교조와 친전교조 세력대 교육부와 학부모단체로 편이 갈려 또 다시 그다지 교육적일 수 없는 세력대결상황을 연출하는 중이다.
평준화를 유지하거나 포기하거나 중요한 사실은 우리 아이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는 일이다. 교사들 평가제도를 어떻게 바꿔도 교육의 현장인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바뀌지 않으면 한국사회에 미래는 없다. 더 이상 교직단체의 이권다툼이나 이데올로기적 명분 싸움에 힘을 낭비할 시간이 없다. 어른들이여, 이제 교실을 들여다 봅시다. 그리고 각자 할 일을 제대로 합시다.
이화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