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리메이크 드라마 별 온도차는 존재한다. 일본이나 중국 작품을 원작 삼은 국내 리메이크작이 호평 받은 반면 미국이나 영국 등 서양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작품의 성적은 상대적으로 신통치 않다. 무엇이 문제일까?
# 동양과 서양, 정서의 차이?
최근 몇 년 사이 유명 서양 드라마를 기반으로 한 리메이크한 드라마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특히 CJ E&M이 적극적이다. ‘안투라지’ ‘크리미널 마인드’ ‘굿 와이프’ 등에 이어 현재는 OCN ‘미스트리스’가 방송되고 있다. KBS 역시 배우 장동건, 박형식을 쌍두마차로 앞세운 ‘슈츠’를 평성했다.
사진=OCN ‘미스트리스’ 공식 홈페이지
하지만 이들 중 소위 말하는 ‘대박’은 없다. 이 드라마들이 현지에서 폭발적 반응을 얻으며 ‘크리미널 마인드’가 시즌14까지 제작되는 등 시즌 드라마로 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것에 비해 국내의 반응은 미미한 편이다. 미국에서 시즌8까지 소개됐던 ‘안투라지’는 배우 조진웅, 서강준, 이광수가 주연으로 나서고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카메오 출연하며 눈길을 사로잡았지만 시청률은 2%대에 그쳤다. 그나마 ‘크리미널 마인드’는 4%대까지 기록했으나 작품에 대한 호평은 드물었다. 배우 전도연의 드라마 복귀작으로 화제를 모았던 ‘굿 와이프’가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시청률 6%까지 치솟았던 것이 위안거리다.
배우 한가인이 6년 만에 선보인 ‘미스트리스’는 김윤진이 원작 주연을 맡아 국내 팬들에게도 익숙한 작품이지만 시청자들에게 외면받고 있다. 1%대 시청률을 전전하고 있고, 지난 5월 19일 방송된 7회의 시청률은 0.8%로 추락했다.
이에 대한 분석은 분분하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정서적 차이’다. 미국 드라마의 경우 치정을 비롯해 살인, 섹스 등 자극적 소재를 과감하게 드러낸다. 웬만한 국내 ‘막장 드라마’ 못지않은 설정이 난무한다. 하지만 오랜 기획과 제작 기간을 통해 탄탄한 내러티브를 풀어가며 ‘웰메이드 막장’이라는 평을 얻는다. 서양 드라마이기 때문에 ‘저 나라에서는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국내 시청자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이유도 있다.
하지만 국내 리메이크 과정에서 이런 적나라하고 자극적인 요소들이 적잖이 배제된다. 표현 수위에도 한계가 있고, 주연을 맡은 유명 배우들이 대본 수정을 요청하기도 한다. 결국 해외 원작을 본 후 기대감에 부풀었던 시청자들에게 국내 리메이크작은 다소 밋밋하고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 드라마 외주제작사 대표는 “만약 원작의 내용을 그대로 살려 표현했다면 ‘현실성이 없다’ ‘보기 불편하다’ 등 시청자들의 지적이 나올 가능성이 많다”며 “이러한 정서적 차이와 시청자들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리메이크 드라마는 창작 드라마보다 더 제작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사진=KBS ‘슈츠’ 공식 홈페이지
# 왜 일본 드라마에 집중되나?
국내에서 리메이크하는 해외 드라마의 원산지는 주로 일본이다. 얼마 전 드라마 편성 공백 기간을 가졌던 MBC가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다시 선보였던 ‘하얀거탑’을 비롯해 ‘꽃보다 남자’, ‘직장의 신’, ‘그 겨울 바람이 분다’ 등을 비롯해 최근 배우 이보영이 주연을 맡아 호평 받았던 ‘마더’ 등도 일본 드라마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국내 방송사나 제작사가 일본 드라마를 선호하는 이유는 많다. 일단 엔터테인먼트 시장이 발달한 일본과는 판권 계약이 깔끔하다. 작품에 대한 권리 관계가 분명해 조건만 맞으면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게다가 역수출도 가능하다. ‘꽃보다 남자’와 ‘그 겨울 바람이 분다’ 등은 한류스타들이 대거 출연하면서 리메이크 드라마가 다시금 원작의 나라로 팔려 큰 인기를 모았다.
일본 드라마가 풍기는 정서가 한국 시청자들의 공감을 사기 적합하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또한 ‘담백하다’ ‘밋밋하다’는 평을 받곤 하는 일본 드라마는 국내에 비해 자극적인 설정이 덜한 편이다. 결국 국내에서 다시 만드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설정이 더해지며 극성 강한 드라마가 되니 ‘원작을 넘는 작품이 나왔다’는 평가를 받곤 한다.
여기에 중국 시장도 가세했다. 중국이 새로운 한류의 중심으로 떠오르며 2016년 방송된 드라마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는 국내에서 리메이크된 후 중국 동영상업체 유쿠(優酷)로부터 회당 40만 달러(약 4억 5000만 원)의 역대 최고 대우를 받고 수출됐다. 이 외에도 ‘운명처럼 널 사랑해’ ‘너를 사랑한 시간’ 등 대만 원작 드라마가 제작되기도 했다. 중국어권이 한류의 주요 수출지로 급부상하며 현지 작품을 다시 만들어 되파는 것이 하나의 성공 공식이 됐다.
한 지상파 방송사 간부급 PD는 “같은 소재도 유명 한류스타가 출연하면 아시아 팬들의 엄청난 관심을 받기 때문에 한류의 온상지인 일본, 중국어권 드라마 리메이크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라며 “반면 서양 드라마는 국내 정서로 바꾸는 과정에서 원작의 맛이 사라지고, 국내 유명 배우가 출연해도 서양 시장으로 되파는 사례가 적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은 편”이라고 분석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