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손해보험은 자사 설계사들이 최근 대형 보험대리점인 ‘메가’로 이적하자 메가와 갈등을 빚고 있다. 박정훈 기자
[일요신문] 여러 보험회사의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는 보험대리점(GA)이 갈수록 대형화하면서 보험사들과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양쪽의 이전투구는 기존의 힘겨루기 수준을 넘어 공정거래위원회 제소로 이어지며 전면전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기존에는 자체 판매채널이 상대적으로 약한 중소형 보험사의 갈등이 많았던 반면 최근에는 대형 보험사들과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KB손해보험(KB손보)이 최근 대형 GA인 ‘메가’로 이적한 자사 설계사들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KB손보는 이들 설계사들에게 상품 판매 코드를 발급하지 않아 ‘보복행위’가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코드 발급은 쉽게 말해 상품판매 권한을 부여하는 것으로, 메가는 사실상 이적 설계사들의 영업을 차단한 KB손보의 행태에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제소라는 강수로 맞받았다. 메가는 공정위 조정이 불발될 경우 법정싸움까지 가겠다는 태세다.
금융권에 따르면 메가 산하 사업단 중 최대 규모의 영업조직을 보유하고 있는 ‘메가 리치’는 지난 2월 공정위에 KB손보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조정신청을 냈다. 이 사건의 발단은 최근 KB손보 전속설계사 60여 명이 메가 리치로 자리를 옮기자 회사 측이 해당 설계사들에게 판매코드 발급을 제한하면서 발생했다. 통상 손보사의 경우 설계사 이동 후 3~6개월, 최장 1년이 경과하면 판매코드를 발급해 주지만 KB손보는 이들에게 상품판매 권한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이에 메가 리치 측은 일정 기간이 경과한 후 KB손보 측에 수차례 판매코드 미발급 설계사 명단을 제출하고 코드 발급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메가 리치는 KB손보에 설계사의 코드 발급 거절 사유를 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구체적 사유를 듣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메가 리치는 KB손보가 합리적 이유 없이 상품판매 코드 발급을 거절하고 있다고 판단, 공정위에 조정신청을 냈다.
이에 KB손보는 지난 4월 양종희 대표이사 명의의 답변서를 통해 메가 리치의 공정위 조정신청 내용을 반박했다. KB손보의 답변서에 따르면 KB손보에서 메가 리치로 이적한 설계사 가운데 4명만 코드 발급이 가능한 상태이며 나머지는 ‘모집질서 위반’이나 ‘기타’ 사유로 코드 발급이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KB손보 내부 기준에 근거한 ‘모집질서 위반’은 보험업법 위반과 같이 모집 과정에서 지켜야 할 준수사항의 위반을 의미하며 ‘기타’는 범법행위자, 신용불량, 금전사고, 보험사기, 장기보험 손해율 심사대상자에 준하는 문제가 있는 자에 해당한다. KB손보는 해당 설계사에게 코드를 발급해 줄 경우 회사의 경영건전성에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고 보험소비자 피해가 우려돼 코드 발급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GA와 보험사의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특히 최근에는 설계사 이적을 놓고 상위권 대형 보험사들과 갈등이 자주 발생해 자칫 밥그릇 싸움으로 비칠 우려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메리츠화재는 지난해 자사 설계사들이 보험대리점으로 이적 후 승환계약이 이뤄졌다며 손해보험협회에 신고했다. 박정훈 기자
금융권에 따르면 메리츠화재가 신고한 승환계약은 보험설계사 57명에 보험계약 1270여 건에 이른다. 결국 손보협회가 전국 주요 지사를 상대로 조사를 실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손보협회 조사 결과는 다소 충격적이다. 협회는 승환계약이 이뤄진 사실은 물론 심지어 비교안내 확인서까지 위조해 활용해온 사실까지 적발했다. 이에 따라 협회는 승환계약 56건에 대해 56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하지만 보험설계사 이직과 이에 따른 승환계약을 둘러싼 보험사와 GA 간 갈등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금융권은 무엇보다 기형적인 승환계약 제재방식이 문제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한다. 금융권에 따르면 GA가 저지른 불법 승환계약에 대한 과태료는 보험계약을 새로 인수한 보험회사에 부과토록 하고 있다. 이후 해당 보험사는 GA에 해당 과태료를 구상청구하도록 돼 있는 구조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형 GA에 대해 상대적으로 을의 관계인 보험사가 구상 청구를 한다는 건 사실상 쉽지 않은 일”이라면서 “부과 대상을 GA로 바꾸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다 일부 GA의 경우 승환계약을 통해 새로 계약하는 보험사에서 받는 수당 등 각종 수입을 이익창출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는 등 제도의 허점을 악용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보험 고객이 해약으로 인한 금전적 손실을 입는데도 GA들은 이를 보전해주는 대신 수익을 거둬들이는 데만 열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
금융권의 다른 관계자는 “금융당국에서도 승환계약을 모집질서 문란 행위로 규정하고 있지만 처벌수위가 약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면서 “당사자들의 타협과 협상에 의존하는 현재의 방식 대신 보험 소비자를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