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방식이란 2003년 리비아가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면서 보유하고 있던 핵시설과 자료들을 미국으로 넘긴 것을 말한다. 미국은 이에 대한 보상으로 2004년 대 리비아 경제제재를 완화하고 양국에 상호 연락사무소를 개설했으며, 2006년에는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대 서방 테러의 선봉에 서서 서방국들로부터 ‘아랍의 미친 개’로 불렸던 무아마르 카다피 당시 리비아 국가원수는 2009년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해, 총회장에서 일장연설을 했으며, 미국의 정치·경제 지도자들과 두 나라 간의 협력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카다피는 2011년 봄 아랍권에 번진 민주화 운동인 자스민 혁명의 와중에서 민중의 반란으로 권좌에서 축출돼 도주행각을 벌이던 중 그해 10월 반군의 총에 맞아 처참하게 사살됐다. 북한이 리비아 방식에 알러지 반응을 보이는 것은 카다피의 죽음 때문이다. 그들은 카다피가 핵무기를 포기했기 때문에 서방의 공격을 받아 죽었다고 믿는다. 리비아 방식은 북측에게는 김정은 노동당위원장 제거와 동의어인 셈이다.
최선희의 담화문에 ‘우리가 리비아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핵을 개발했다’고 한 것이나, 김계관이 ‘리비아와 이라크의 운명을 존엄 높은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에 격분을 금할 수 없다’고 한 것은 리비아 방식에 대한 극도의 거부감이다. 리비아의 핵포기와 카다피의 죽음 사이에는 8년이라는 시차가 있다. 그 8년 동안 미국과 리비아는 비교적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자스민 혁명 당시 카다피는 시위진압을 위해 폭격기를 동원했고, 게다가 42년간 장기집권해온 권력을 아들에게 세습하려 한다는 의혹까지 샀다. 카다피를 죽인 것은 민중혁명이었지 핵포기가 아니었다.
두 사람의 담화는 공통적으로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전제로 한 미국과의 대화를 강조하고 있다. 최선희는 미국이 북한을 압박하면 ‘지금껏 상상하지 못한 끔찍한 비극을 맛보게 될 것’이라고 핵공격 위협까지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핵포기를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한 근거였을 것이다. 북미회담 취소는 북한이 정상국가가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약속을 지키는 것 외에 품위 있게 말하는 것임을 일깨우기도 한다. 남한은 동족의 입장에서 북한의 무례와 약속 파기를 참아줬지만 다른 나라에는 통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북측의 예고 없는 남북고위급회담 취소, 남한 취재진에 대한 풍계리핵실험장 폐기식 취재 허용과정의 약속 파기가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임종건 언론인 전 서울경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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