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경 이화여대 교수 | ||
그러나 이 법률의 더 근본적인 문제는 탈법행위와 관계없이 휴대전화를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수험생을 죄인으로 취급할 수 있다는 제정 취지다.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인격권의 명백한 침해행위다. 개인의 자유를 가장 우선시하는 선진 사회에서는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 법률이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매체간 교차 소유를 제약 없이 인정하는 현실에서 가장 경쟁력이 취약한 신문의 제작 체제와 배달 업무에까지 정부가 공적 자금을 지원하며 개입할 수 있는 길을 터놓은 신문관련법 역시 비슷한 법의식의 산물이다. 민주사회는 법의 지배를 뿌리로 하니 활발한 입법활동은 격려해야할 일이다. 그러나 최근의 입법 조류를 보며 70년대 초에 온 국민을 옭아매던 일련의 긴급조치들을 떠올리는 것은 얼토당토 않은 기우인가.
물론 말도 안 되는 기우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철저하게 억압적인 유신시대에는 유정회라는 이상한 국회의원 집단을 만들어 집권당을 위한 인위적 다수를 구조화했다. 당시 반대세력을 폭력으로 제압하기 위해 임의적으로 선포했던 긴급조치들은 오늘날의 입법과정과는 비교할 수 없는 독단적 행동들이었다. 어떻게 비슷한 맥락에서 고려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안타깝게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한 가닥 의구심이 남는다. 간단히 요약하면 혹시 이러한 법의식이 한국인의 특징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정치체제는 권위주의에서 민주체제로 근본적으로 바뀌었지만 시시콜콜한 국민들의 일상생활 영역까지도 법률적으로 규율해야 하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우리사고의 틀 속에서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다.
나는 법률보다는 개인의 양식을 더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창의적인 사회가 되려면 법률은 최소한으로 제정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수능시험장에 휴대전화를 가져오는 일은 상식과 도덕의 문제이어야지 법률이 개입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학이 어떠한 시험문제를 내야하는지를 국가가 법률적으로 강제하는 일은, 대한민국의 학문발전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 그렇게 세세한 일에 개입할 열정이 있는 정부가 어떻게 암에 걸린 병사에게 2년 넘도록 소화제만 주는 군의료제도를 내버려두고 있는가. 10년 넘게 끌어온 농어촌 경쟁력 대책은 어떻게 했기에 1천 명이 넘는 농민들이 홍콩까지 가서 시위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는가. 논란 속에 일방적으로 통과된 사학법은 사립학교의 지배구조개선에는 일부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정작 핵심 문제인 학력증진과 교실의 정상화와는 역시 거리가 멀어 보인다. 법안에 집착하다가 사람을 보지 못하는 결과다. 돌아보면 올 한 해는 각종 법률이 대거 새로 제정됐다. 안타까운 점은 그러한 과정에서 법이 사람을 위해 만들어지는게 아니라, 우리가 법을 만들기 위해 살아가는 게 아닌가를 걱정해야 하는 지경이 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