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 ||
세계화시대의 만국공통어라는 영어가 이처럼 지역과 시대에 따라 변화를 거듭하다 보니 셰익스피어가 살아나면 보통사람들이 쓰는 영어단어의 절반도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셰익스피어는 비행기나 자동차는 물론 베이비 시터니 미사일처럼 새로 생겨난 단어들의 뜻을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하루가 다르게 새로 생겨나는 인터넷 용어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영어가 세계화시대의 필수언어가 되고 인터넷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우리 고유의 언어도 많이 오염되고 왜곡되었다. 게다가 말이나 글에 영어를 섞어 써야 제대로 공부한 사람 쯤으로 행세할 수 있었던 변방적 문화풍토는 우리말을 훼손하는 한 원인이었다. 써야 할 곳, 안써야 할 곳 가리지 않고 영어단어를 섞어 쓰는 바람에 단어의 본래 뜻마저 왜곡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한반도에 상륙한 영어단어가 본래 뜻과 달리 쓰이는 사례로 ‘가든(garden)’과 ‘게이트(gate)’가 있다. `‘가든’이라는 단어를 사전에 실린 풀이 그대로 정원으로만 알았다간 그야말로 간첩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가든은 이미 국도변에 자리잡은 갈비집이나 토종닭집을 뜻하는 단어로 정착되었다. 그런가하면 ‘문’을 뜻하는 게이트도 언제부터인가 고위층이 연루된 권력형 대형비리를 가리키는 대명사로 굳어졌다. 그러다보니 무슨 의혹사건만 터졌다하면 신문지면이 온통 게이트로 뒤덮이곤 한다.
물론 권력형 비리에 게이트라는 단어를 붙이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초 미국에서 일어난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비롯된다. 1972년 6월, 닉슨대통령의 측근들이 닉슨의 재선을 위한 공작의 일환으로 워싱턴 D.C 워터게이트호텔 건물에 들어있던 민주당 사무실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들통난 사건이다. 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대통령인 닉슨은 거짓말을 거듭했고 이 거짓말 때문에 그는 임기도중에 물러나는 역사적 오점을 남겼다. 그 워터게이트사건이 끝난 지 30년이 넘었지만 게이트라는 말은 멀리 바다 건너 대한민국에서 권력형비리의 대명사로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이다.
이제는 권력형 비리가 터질 때마다 무슨 게이트라고 이름붙이는 언론의 관행도 바뀌어야 한다. 아무리 영어가 `조자룡의 ‘헌칼’처럼 무소불통으로 쓰이는 세상이라곤 하지만 아무 생각없이 쓰는 영어가 우리말을 오염시킨다는 것쯤은 깨달았으면 좋겠다. 더욱 한심한 것은 요즘 들어 일부 신문들이 김근태·정동영 두 의원을 GT나 DY로 표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력 정치인의 이름을 YS나 DJ니해서 영어 이니셜로 부르는 관행도 3김정치도 끝났겠다, 이젠 청산해야 할 폐습이 아닌가.
이광훈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