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6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2018년도 제1차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5월 29일 취임 후 처음으로 가계 동향을 점검하기 위한 긴급회의를 열었다. 현 정부 핵심 기조인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되고, 이에 대처해야 할 경제팀의 컨트롤타워 격인 장하성 정책실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 간 갈등설이 불거지자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선 것이다. 문 대통령이 지나치게 외교·안보 이슈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고개를 들던 때이기도 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소득 분배 악화는 우리에게 매우 아픈 지점”이라고 말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소득주도성장의 목표는 양극화현상을 줄여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다. 그런데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하위 20% 가구 소득은 8% 줄어들었고, 상위 20% 가구 소득은 9.3% 늘어 역대 최대로 벌어졌다. 야권을 중심으로 ‘J 노믹스’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고, 학계 등에서도 갑론을박이 오갔다.
한 친문 의원은 “올해 들어 문 대통령의 일정은 북한 문제를 푸는 데 무게를 뒀던 게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경제를 비롯해 일부 부문에서 청와대와 부처 간 소통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은 측면이 있었다. 이번 긴급회의 역시 분배지수 악화를 놓고 벌어진 일련의 마찰 등에 대해 시장의 우려가 높아지자 문 대통령이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관련 인사들을 소집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경제팀 교통정리에 나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공직사회에선 김동연 부총리의 ‘마이 웨이’가 화제를 모았다. 지난해부터 ‘패싱’ 논란에 휩싸였던 김 부총리는 최저임금과 관련해 소신 발언을 하고 나섰다. 김 부총리는 5월 16일 국회에 출석해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이나 임금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소득주도성장에 배치되는 발언을 했다. 4월에 “고용 부진은 조선·자동차 등의 구조조정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가 입장을 바꾼 것이다.
김 부총리의 발언 전날 장하성 실장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감소 효과는 분명히 없다”고 했다. 그런데 김 부총리가 이에 배치되는 발언을 하면서 문재인 정부 경제 투톱을 일컫는 ‘김앤장(김동연 장하성)’ 갈등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청와대 경제수석실 근무 경력의 한 고위 공무원은 “어떤 지표를 놓고 해석차는 있기 마련이다. 장 실장이나 김 부총리 모두 정확한 근거를 들어서 주장을 하고 있진 않다”면서 “어공(어쩌다 공무원)인 장 실장에게 그동안 밀렸다는 평가를 받았던 늘공(늘 공무원) 김 부총리가 반격에 나선 것 같다”고 했다.
이를 바라보는 시장과 정치권의 시선은 곱지 못했다. 최저임금 인상 등에 따른 부작용이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 수장들의 이견이 사전 조율 없이 겉으로 표출될 경우 국민들에게 혼란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앞서의 고위 공무원도 “경제부총리와 정책실장이 이렇게 자존심을 걸고 공방을 벌이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면서 “이렇게 되면 두 사람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 역시 곤란한 것은 마찬가지다. 눈치 보기 바쁠 그들에게 무슨 제대로 된 정책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그래서 문 대통령이 29일 소집한 가계 동향 긴급 점검회의는 더욱 주목을 받았다. 이날 장 실장과 김 부총리는 대통령 앞에서도 최저임금을 놓고 설전을 벌인 것으로 전해진다. 결과는 장 실장의 ‘판정승’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회의 후 청와대는 서면 브리핑을 통해 “앞으로 장 실장이 주도해 관련 부처 장관들과 함께 경제 전반에 대해 회의를 계속 개최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장 실장이 주도해’라는 부분이 논란이 일자 청와대는 “장 실장과 관련 부처 장관들이 함께”로 수정했다. 이를 놓고 경제팀 ‘원톱’은 부총리가 아니라 장관급인 정책실장임을 문 대통령이 분명히 한 것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다음날 김 부총리는 간부회의를 열어 “소득 1분위를 포함한 저소득층의 소득 향상과 분배 개선을 위해서는 소득이전지출 등 대책들도 중요하지만 경제 전반의 활력을 북돋울 수 있는 혁신성장이 중요하다”고 했다. 저소득층 소득 강화 특별 대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라는 청와대 주문과는 다소 결이 다른 발언으로 소신을 굽히지 않은 것이다. 김 부총리는 “기재부가 중심이 돼”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 ‘장 실장이 주도해’라는 청와대 브리핑을 의식한 것으로 읽힌다. 기획재정부 내에선 “김 부총리가 배수진을 쳤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러자 다시 문 대통령이 나섰다. 문 대통령은 31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소득주도 성장이 실패하거나 최저임금의 급격한 증가 때문이라는 진단이 성급하게 내려지고 있다. 정부가 잘 대응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혁신성장에서 뚜렷한 성과와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있다.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경제팀에서 더욱 분발해 규제혁파에도 속도를 내달라”고 당부했다. 전날 혁신성장이 중요하다고 했던 김 부총리를 사실상 질책한 셈이다. 또한 김 부총리의 역할을 J 노믹스 3대 기조인 소득주도성장, 경제민주화, 혁신성장 중 혁신성장에만 국한했다는 해석도 뒤를 이었다.
여권에서도 김 부총리에 대한 비토 기류가 우세해 보인다. 또 다른 친문 의원은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을 인상하겠다는 것은 문 대통령 소득주도성장의 핵심 공약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김 부총리가 다른 얘기를 공개적으로 꺼낸 것은 대단히 부적절한 일”이라면서 “경제부총리는 소신을 말하는 자리가 아니다. 본인 스스로 입지를 좁혔다”라고 꼬집었다. 여권 일각에서는 지방선거 후 단행될 것으로 알려진 개각에서 청와대가 경제부총리 교체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추측도 확산 중이다.
그러나 김 부총리를 옹호하는 반응도 만만치 않다. 김 부총리가 언급한 최저임금 속도조절에 공감을 나타내는 이들도 있었다. 문재인 캠프 경제관련 공약 마련에 참여했던 민주당 관계자는 “경제라는 게 그때 상황에 맞춰 정책을 펴나가는 것 아니냐. 김 부총리 언급에 고개를 끄덕이는 의원들도 제법 있다. 또 부총리가 다른 얘기를 했다고 청와대 참모와 여권 의원들이 총공세에 나서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 이러면 ‘늘공’이라 불리는 관료 출신 장관들이 소신 있게 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했던 한 친문 의원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각종 경기 지표를 살펴보면 경제전망은 상당히 어둡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판단이다. 소득분배지수뿐 아니라 고용이나 건설 경기 등이 너무 좋지 않다. 지금까진 적폐청산이나 북한 이슈에 가려져 있지만 언젠가는 현실적으로 체감할 때가 분명히 온다. 정권 재창출의 분수령이 될 2020년 총선의 성패는 무조건 경제에 달려 있다. 그럴 경우를 미리 대비해야 한다. 김 부총리 진단에 대해 학계에선 긍정적인 평가가 많은 것으로 안다.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문 대통령이 자칫 청와대 인의 장막에 싸여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