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필상 고려대 교수 | ||
최근 외환은행의 매각 논란은 이 같은 외국 자본에 의한 경제적 희생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미국계 펀드인 론스타는 2003년 10월 외환은행 지분 50.53%를 1조 4000억 원에 사들였다. 이후 구조조정을 계속하여 주가를 올려놓고 인수한 지 불과 2년 4개월 만에 다시 팔겠다고 내놓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가로 따져 3조 5000억 원에 이르는 폭리를 세금 한푼 안내고 챙겨 나가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외국 자본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정부는 외국 자본이 국내 기업이나 금융 기관을 인수한 후 다시 매각하거나 경영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투기자본의 기업 사냥이나 국부 유출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물론 세계화 시대에 외국 자본에 대해 적대감을 갖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더욱이 경제가 어려운 상태에서 외국 자본에 대한 거부감 표시는 경제 신인도를 떨어뜨리고 외국인 투자를 막아 경제를 고립시킬 우려가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주요 기업과 금융 기관들이 외국 자본의 투기 희생물로 전락하는 것을 방치할 수는 없다. 더구나 외국 자본이 공격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기업과 금융 기관들은 대부분 국민의 피와 땀으로 컸다. 이들을 먹이감으로 하여 국부를 대거 유출시키겠다는 것에 대해 논의조차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외국 자본의 투기 행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외국 자본은 피도 눈물도 없다. 먹이만 보이면 무조건 공격해서 숨을 끊어 놓는 속성이 있다. 이런 행태를 그냥 덮고 넘어간다면 앞으로 얼마나 더 큰 희생을 당할지 모른다. KT&G의 경우 경영이 투명하고 지배구조가 우수한 기업인데도 불구하고 외국 자본의 공격에 속수무책이다. 외환은행의 경우 조기 매각을 위해서 BIS 자기자본비율을 낮게 조작하여 헐값에 사게 했다는 의혹까지 있다. 더욱 안타깝게도 론스타가 팔겠다고 내놓은 외환은행에 대해서 국민은행과 하나금융지주가 치열한 인수 경쟁을 벌이고 있다. 값을 계속 올려 론스타에게 폭리를 더해주는 상잔의 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외국 자본을 무조건 선으로 보는 인식은 바꿔야 한다. 이에 근거하여 대주주의 의결권을 복수로 허용하는 차등의결권제도나 인수·합병을 반대할 수 있는 특별주제도 등을 도입해서 대기업의 경영권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를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내 자본을 적극적으로 육성하여 외국 자본에 대항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기업들 스스로 경영을 투명하게 하고 지배구조를 개선하여 주식 가격을 높여야 한다. 또 기관 투자가들을 집중 육성하여 기업 경영을 감시하고 부당한 인수합병을 막는 우호 세력으로 역할을 하게 해야 한다.
경제는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의 피와 땀으로 큰 기업과 금융 기관들을 우리의 것으로 지키는 데 국민적인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