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인 팀 2002 멤버들. 연합뉴스
[일요신문] 날카로운 턱선은 사라지고 옆구리 살도 두툼해졌지만 한국 축구를 생각하는 마음은 여전했다. 홍명보, 김병지, 최용수, 안정환, 이천수 등 2002 한일 월드컵 주역들이 지난 5월 31일 다시 뭉쳤다. 김병지 해설위원이 회장으로 나서 조직된 ‘팀 2002’는 축구발전기금을 내놓는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번엔 2018러시아월드컵에 나설 후배들을 위해 의기투합했다. 후배들의 선전을 기원하는 동시에 월드컵 분위기 ‘붐업’에 나섰다.
#러시아 떠나는 후배들을 향한 마음
행사 진행이 예정된 서울 마포구 풋볼 팬타지움에는 오후 3시가 가까워오자 ‘팀 2002’ 멤버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치열했던 선수생활을 마치고 몸이 불어나 이전과는 다른 모습들이었다. 이운재 코치는 갈아입을 유니폼이 너무 몸에 붙는다며 난감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럼에도 오랜만의 만남에 16년 전 청년으로 돌아간 듯 서로가 농담을 주고받았다.
16년이 흘러 당시 대학생, K리그 신인이던 선수들도 이제는 해설위원이 됐지만 이들에 대한 관심은 현역 못지 않았다. 실제로 예상보다 많은 취재진들이 몰려 현장은 혼선을 빚었다. 간담회 장소를 풋볼 팬타지움 내 다른 장소로 옮기는 해프닝까지 일어났다.
팀 2002의 회장을 맡은 김병지 해설위원은 “월드컵에 나설 후배들을 격려하고 국민들께 응원을 부탁하기 위해 급히 뭉쳤다”고 말했다. 그와 포지션 경쟁을 펼쳤던 이운재 수원 코치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는 “국민들께서 많이 응원해주셔서 우리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이번에도 국민들이 힘을 불어넣으면 선수들이 우리보다 높이 올라가지 말라는 법도 없다. 대한민국을 들썩일 수 있는 결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회에서 첫 골의 주인공을 예상하는 질문에는 각기 다른 답을 내놓기도 했다. 설기현 성균관대 감독과 최용수 전 장쑤 쑤닝 감독은 “슈팅력이 좋다”며 손흥민을 꼽았다. 이천수 해설위원은 ‘제2의 이천수’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승우를 언급하며 “나를 닮았다. 이승우가 넣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드러냈다. 이례적으로 수비수를 이야기한 이도 있었다. 최태욱 서울 이랜드 코치는 “의외로 세트피스에서 골이 들어갈 수 있다. 김영권을 예상한다”고 말했다.
팀 2002 멤버들은 간단한 간담회를 마치고 서울월드컵경기장 내 풋살 경기장으로 향했다. 자신들이 월드컵 4강에 진출할 당시 태어났던 2002년생 청소년들과 친선경기를 가지기 위해서다.
이날 팀내 ‘웃음’을 담당한 최용수 감독(왼쪽). 연합뉴스
이동을 하면서도 이들의 장난은 계속됐다. 최용수 전 감독은 오랜만에 입은 유니폼에 어색해하면서도 선수 시절 몸매를 유지하고 있는 설기현 감독을 향해 “옷발이 사네”라며 덕담을 건넸다. 최근 TV 예능 프로그램에 잇달아 출연하고 있는 최 감독의 주변에는 이날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간담회 시간에도 그가 마이크를 잡으면 동료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김병지 위원이 ‘백수’라고 놀리자 “어허, ‘주택관리사’라니까”라며 익살스럽게 맞받아치기도 했다.
#2018년, 끝나지 않은 팀 2002의 전성시대
팀 2002 멤버들이 월드컵 4강에 오르며 대한민국을 붉게 물들인 지 16년이 흘렀다. 어느덧 이들은 한 발 물러서 후배들을 응원하는 입장이 됐다. 하지만 러시아 월드컵이 열리는 2018년은 이들에게 남다른 해다.
팀 2002에서 마지막까지 선수생활을 이어오던 현영민 해설위원은 올해부터는 선수 유니폼을 입지 않게 됐다. 전남 구단은 지난 3월 홈경기장에서 은퇴식을 열어 그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팀 2002에 더 이상 ‘현역 축구선수’는 없다.
해설위원으로 2018 러시아 월드컵에 나서는 박지성 대한축구협회 유스본부장. 일요신문DB
오랜 기간 월드컵 해설은 ‘차범근 천하’였다. 신문선, 이용수 해설위원 등이 분전하기도 했지만 시청자들의 선택은 ‘불세출의 축구스타’ 차범근 전 감독이었다. 한 방송계 관계자는 “차 전 감독은 마이크를 잡으면서 ‘시청률 무패신화’를 이어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패신화는 지난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깨졌다. 이는 2002세대의 해설계 등장과 궤를 같이한다. 방송계에서는 차 전 감독의 ‘수성’을 낙관했지만 연일 ‘예언’을 쏟아내던 이영표 위원, 예능에서 맹활약으로 친근감을 더한 안정환 위원이 시청률에서 앞섰다. 앞서의 관계자는 “내가 아는 한 처음으로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차 전 감독은 이미 대회 이전부터 “해설로 나서는 마지막 월드컵”이라고 선언했다. SBS는 그의 ‘후임’으로 박지성을 내세웠다.
축구를 소비하는 이들의 세대교체가 이뤄지며 해설위원도 자연스레 세대교체가 진행됐다. 한국 축구는 K리그나 연령별 대표팀 지도자, 방송 등에서 2002세대가 중심을 잡고 있다. 월드컵 시즌이면 반복되는 축구인들이 나서는 행사나 방송에서도 ‘대박이 아빠’ 이동국 정도를 제외하면 2002 멤버들이 주인공이다. 16년 전의 무용담이 끊임없이 나열된다. 행사나 방송 외에 이들은 프로팀이나 각급 대표팀에서도 코칭스태프로 빠르게 자리를 꿰찼다.
이 같은 분위기는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002 월드컵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도 팀 2002 멤버들에 대해 모르지 않는다. 팀 2002와 친선 경기를 가진 2002년생 청소년들은 “부모님이 말씀도 많이 해주셨고 TV나 게임 속에서도 많이 봤다.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미디어는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2002 월드컵을 지속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어린 세대에게 인기 있는 온라인 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2002 월드컵 멤버들의 전성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89년생인데…’ 2002년생 사이에 끼어든 청년(?) 김수빈 SPOTV 아나운서. 김병지 해설위원은 지난 5월 31일 팀 2002와 2002년생 청소년들의 친선 풋살 경기를 진행했다. 경기에 뛸 청소년들을 직접 모집했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태극전사’ 4행시를 지은 청소년 중 10명을 선정했다. 하지만 지난 5월 31일 현장에는 청소년이라기엔 성숙해 보이는 인물이 2002년생 팀에 섞여 있었다. 이는 다름 아닌 김병지 위원과 함께 중계 마이크를 잡고 있는 김수빈 SPOTV 아나운서였다. 그는 김 위원의 페이스북에 당당히 1989년생임을 밝히며 4행시 말미에 ‘사랑해요 이운재’라는 구절로 보는 이들에게 웃음을 줬다. 김 위원도 “김수빈은 출생연도에 관계없이 초청 확정”이라며 이를 공개했다. 2002년생 청소년들과 호흡을 맞춘 김 아나운서는 “저도 4행시를 쓰면서 즐거움을 드리고 싶어 장난을 쳤는데 김병지 위원께서 웃으며 초대해 주셨다”며 “좋은 행사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 김 위원과 호흡을 맞춰 열심히 중계하겠다. 다가올 월드컵에서도 우리나라 선수들에게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