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원 한남 사업은 대신증권이 전사적 역량을 기울인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로 알려져 있다. 지난 정부 당시 경쟁 증권사가 초대형 투자은행(IB) 인가 등 금융업에 집중했다면 대신증권은 사업 다각화를 명분으로 부동산 투자에 매진했다. 서울 여의도 대신증권 빌딩. 이종현 기자
그런데 대신증권은 올 들어 지속적인 PF 상환 압박에 시달렸다. PF 조건인 아파트 분양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당초 대신증권은 아파트 분양 희망자를 대상으로 분양금을 받아 PF 대출금과 이자를 상환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분양 공고가 무기한 미뤄지면서 매일 이자 비용이 누적됐다. 부동산업계는 대신증권이 최근까지 납부한 PF 이자만 최소 3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이는 개별 재무제표 기준 2016년 대신증권이 기록한 당기순이익(305억 원)과 맞먹는 수치다. 지난해 대신증권은 614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즉 PF 이자로만 지난해 당기순이익의 절반가량을 잃은 셈이다.
최근 대신증권은 NH투자증권의 도움을 받아 ‘브릿지론’으로 기존 PF를 상환했다. 전문어로 ‘리파이낸싱’이라 하는데 쉽게 말해 빚내서 빚을 막는 것이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리파이낸싱 된 PF 만기는 오는 12월이다. 즉 12월 내에는 나인원 한남 사업을 매듭짓고 대출금을 상환하거나 추가 융자를 받아 빚을 갚아야 한다.
나인원 한남 조감도. 사진=디에스한남(나인원 한남 시행사) 제공
나인원 한남 사업은 대신증권이 전사적 역량을 기울인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다. 지난 정부 당시 경쟁 증권사가 초대형 투자은행(IB) 인가 등에 집중했다면 대신증권은 사업 다각화를 명분으로 부동산 투자에 매진했다. 2014년 대신증권에 인수된 부실채권(NPL) 투자회사 대신에프앤아이(대신F&I)가 ‘총대’를 멨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 들어 은행은 물론 중소 증권사에서도 소위 ‘선진 금융’이 화두였는데 대신증권은 증권사가 기피하는 NPL에 손을 대는가 하면 부동산 투자까지 해서 의아하다는 평가가 있었다”고 말했다.
2016년 5월 대신F&I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매물로 내놓은 서울 한남동 외인주택 부지를 6242억 원에 사들였다. ‘나인원 한남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당시 사업성에는 여러 의문이 제기됐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외인부지 매각 공고 당시 몇몇 건설사는 한남동 외인주택 부지의 좋은 입지조건과 상징성 등을 고려해 입찰 참여 여부를 검토했으나 낮은 수익성 등 사업 리스크가 드러나면서 대부분 발을 뺐다. 이는 LH가 최초 공고한 입찰가(6131억 원)와 낙찰가(6242억 원)의 가격차가 크지 않은 이유다.
외인부지는 고도제한 규제로 6~7층 이상의 건물을 지을 수 없는 땅이 절반에 달했다. 결국 수익률을 맞추려면 고급주택을 짓고 분양가를 높여야 했다. 더구나 입찰 경쟁이 심해져 인수가가 폭등한다면 마진은 그만큼 줄어드는 구조였다. 때문에 대신증권이 외인부지를 매입하기 전 정부와 사전 ‘교감’을 했던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교감 없이 감당하기엔 리스크가 너무 큰 사업이란 것이다. 대신증권 관계자는 “정상적으로 입찰에 참여해 낙찰받았다”며 “사업성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 여의도 대신증권 빌딩. 이종현 기자
대신증권과 부동산업계의 말을 종합하면 당초 나인원 한남은 2017년 12월까지 분양을 마치고 PF를 상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5월 조기 대선으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나인원 한남 사업이 예상 밖 ‘암초’에 부딪힌 것이다. 대신증권은 당초 3.3㎡당 분양가를 6000만~7000만 원선으로 잡고 초고급 주택단지를 분양하려 했다. 그러나 정부는 제동을 걸었다. 신규 주택에 대한 분양 보증 업무를 맡고 있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인근 시세를 고려해 나인원 한남의 분양가를 4000만 원대로 책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세웠다.
HUG 관계자는 “대신증권과 협의를 진행 중”이라면서도 “분양가에 대한 조정은 검토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HUG는 앞서 대신F&I가 제출한 자료 등을 근거로 나인원 한남의 분양가가 지나치게 고평가 돼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정부는 집값 폭등을 억제하기 위해 분양가 상한제 등의 정책을 펴고 있다. HUG 관계자는 “분양가가 높아지면 부동산 시장의 리스크가 커지는 것도 고려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대신증권이 HUG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 분양가(6300만 원 이상)를 적용한 분양수익은 약 1조 7000억 원이다. 여기에 외인부지 매입비와 공사비 등을 더한 사업비(1조 4000억 원)를 빼면 약 3000억 원이 남는 ‘장사’였다. 그러나 정부 반대로 분양가가 낮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대신증권이 향후 수익을 얼만큼 낼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인근 고급주택인 ‘한남더힐’도 최근 미분양으로 수익성에 빨간불이 들어온 상태다. 대신증권이 당초 기대한 분양수익은 모든 주택의 분양이 다 완료됐을 경우를 가정한 것이다. 그것도 사업비를 아끼고 아껴야만 가능할 정도다. 대신증권 내부에선 이처럼 리스크가 큰 사업을 추진한 배경과 과정을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