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언론인 | ||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링컨은 켄터키주의 통나무 집에서 태어난 민중의 아들이라는 점이 당선에 결정적인 힘이 된 대표적인 사례였다.
학교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지만 독학으로 변호사가 되었고, 주 의원에 이어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등등. 민중의 아들이 될 조건을 골고루 갖춘 데다 그 역경을 딛고 입신했다는 성공스토리가 미국민들의 표심을 움직인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선을 확정한 미·영조약을 주도했던 국무장관 출신 대니엘 웹스터는 통나무집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결점’ 때문에 끝내 대통령의 꿈을 접어야 했다. 웹스터는 자신은 비록 통나무집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그의 형제 자매들은 통나무집에서 태어났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데는 실패했다.
요즘 서울시장의 꿈을 가꾸고 있는 여·야 예비후보들의 이력을 보면 우리가 지금 19세기의 미국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진다. 이들은 대부분 이미 ‘입신양명의 완성’이라는 장관자리를 지냈거나 전·현직 국회의원들이다. 그러나 그분들이 털어놓는 어린 시절은 그야말로 ‘가난과 역경의 종합세트’를 보는 듯하다. 그런 가난과 역경을 딛고 드디어 수도 서울의 수장(首長)자리에 도전하게 되었노라는 입지전적 출사표인 셈이다.
학교 등록금을 못낸 적이 있었다거나 도시락을 못갖고 다녔다는 정도는 약과다. 제일 가난했던 시절에 사춘기를 보냈다느니 ‘달걀행상을 하던 어머니가 피를 뽑아 판 돈으로 입학금을 냈다’ ‘운동화 신은 친구가 부러워 어머니를 졸라 처음으로 흰 고무신을 신어봤다’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가 부도나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 ‘대학 때 철거민촌 판잣집에서 살았는데 그 집마저 헐렸다’ ‘중·고등학교 때 도시락을 못 싸가 수돗물로 배를 채우는 바람에 지금도 뼈가 가늘고 살이 없다’ 등등.
이처럼 약속이나 한 듯 엄살에 가까운 가난타령을 하는 것은 “나는 어떤 역경에도 꺾이지 않고 이를 이겨 낼 자신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자신이야말로 서민의 아픔을 잘 알고 그것을 따뜻하게 감싸 안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정책공약이란 것이 이미 다 써먹은 그 나물에 그 밥인 데다 서울에선 출신지역 프리미엄도 기대할 수 없으니 ‘가난의 추억’으로 서민들의 표심을 낚아보자는 속셈인 모양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동안 잘 나가던 변호사나 국회의원으로, 그리고 장관이나 대기업의 최고경영자로 가난을 모르고 살아온 분들이다. 그런 분들이 새삼 어린 시절의 가난으로 서울시민들의 표심을 잡을지는 미지수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시장을 하겠다는 분들이 가난과 역경을 지나치게 내세우는 것은 모양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따지고 보면 그 같은 ‘가난타령’도 ‘차떼기’나 ‘사과상자’사건이 터질 때마다 석고대죄한다며 천막으로 당사를 옮기는 이벤트와 오십보백보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