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필상 고려대 교수 | ||
우선 문제가 되는 것이 중앙정치의 대리전이다. 이번 선거 역시 과거와 마찬가지로 중앙당이 지방조직책들에게 권력의 무기를 손에 쥐어주어 세력을 전국적으로 조직화하는 정치싸움으로 흐르고 있다. 여야의 선거전략을 보면 이러한 현상이 확연하다. 여당은 야당이 현재 장악하고 있는 지방정부의 부패론을 집중 부각시킬 예정이다. 야당은 여당의 무능정권 심판론을 제기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국민생활이나 지역경제는 또다시 흙탕물 정치싸움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실로 우려가 큰 것은 중앙당의 책임자들이 전국적으로 공천장사를 해서 돈을 버는 범죄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조재환 사무총장은 4억 원의 공천헌금을 받은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이에 앞서 한나라당 소속의원인 김덕룡, 박성범 의원은 수억 원의 공천헌금을 받았다고 수사를 받고 있다. 기초단체장의 경우 5억 원을 내면 공천이고 3억 원을 내면 탈락이라는 ‘5당3락’이란 말이 헛말이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결국 여야 정치권은 지방선거를 돈벌이도 하고 권력도 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부정부패선거로 치르겠다는 뜻이다.
한편 5·31의 지방선거에서 실로 큰 문제로 제기되는 것은 이미지 선거다. 서울시장선거에서 강금실 장관의 보라색 바람과 오세훈 전의원의 녹색 바람이 순식간에 경선의 판도를 바꾸었다. 이미지를 내세운 감성의 정치가 지방자치를 휩쓸 조짐이다. 이미지 선거 운동은 유권자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감성의 노예로 만들어 표를 얻으려는 저급의 정치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러한 이미지 운동으로 선거가 색깔운동으로 변질된다면 그 부작용은 걷잡을 수 없다. 우리 국민들은 색깔 때문에 나라가 찢기는 아픔을 여러 번 겪었다. 해방 후 공산주의와 자유주의의 색깔이 충돌하면서 남북분단이 나타났다. 개발연대에는 민주세력과 독재세력이 충돌하면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피를 흘려야 했다. 최근에는 좌파와 우파로 사회가 나뉘면서 양극화의 고통이 심화되고 있다. 이제 선거판을 떠도는 갖가지 색깔은 또 무슨 사회분열을 만들어 낼지 모른다.
그렇다면 5·31지방선거는 어떻게 치러야 하나. 기본적으로 이번 선거는 중앙당의 대리선거, 금권선거, 그리고 이미지 선거에서 탈피하여 정책선거로 치러야 한다. 이런 견지에서 실현가능한 공약만 제시하게 하고 평가를 하는 매니페스토 운동의 확산이 절실하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일단 당선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여 실현가능하다는 선거공약을 내놓고 당선 후 무시한다면 주민들은 고차원의 계략에 속아 그로부터 오는 혼란과 피해를 고스란히 입게 된다. 매니페스토 운동자체가 당선을 위한 허위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견지에서 매니페스토 운동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져야 할 것이 지난번 국회를 통과한 주민소환제다. 주민소환제는 지방자치단체의 선출직공직자가 공약을 어기거나 비리를 저질렀을 때 주민투표로 해당 공약자를 해임하는 제도다. 매니페스토 운동을 주민소환제와 결부시킬 경우 선거공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주민소환의 위협을 받게 되어 자연히 거짓선거운동이 사라지고 지방자치는 발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