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경 이화여대 교수 | ||
“대학 교육은 권리이지, 특권이 아니다.” 낭테르 캠퍼스에 붙어있는 포스터의 구호다. 여전히 살아있는 프랑스 대학 교육의 기본정신이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프랑스 학생들은 4% 정도의 그랑제콜 진학생을 제외하면 모두 자신이 졸업한 고등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 우리나라 중·고교 학군제와 비슷하다. 학비는 1년에 250달러, 정부가 1인당 8500달러의 학비를 대학에 지원한다. 국가가 전적으로 대학교육을 책임진다는 뜻이다. 그러다보니 교수 월급도 박할 수밖에 없다. 초임교수 연봉은 2만 달러 수준, 정년에 가까운 사람은 7만 5000달러 정도를 받는다.
이러한 대학 현실을 보는 지식인들은 걱정이 크다. “이러한 추세를 뒤집지 못하면우리는 미래 세대를 파괴하는 짓을 저지르는 꼴이다.” 클로드 알레그레 전 교육장관이 뉴욕타임즈에 한 말이다. 낭테르 대학의 한 석사 졸업생은 “대학들은 공장들”이라고 말한다. “이 기계들은 해마다 수십만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는데, 그들은 온통 이론공부를 했을 뿐 실용적 지식은 전혀 갖추지 못했다. 그러니 학위는 현실세계에서 아무런 가치를 갖지 못한다.” 뉴욕타임즈는 이 학생도 취업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그런가 하면 뉴욕타임즈 5월 14일자 예일대 음악대학 기사는 정반대 이야기를 전한다. 예일 음대 대학원은 올 가을 신입생 지원율이 두 배로 뛰었다.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등록금을 무료로 해주겠다는 학교의 발표였다. 이 기사에 따르면 예일 음대는 익명의 독지가로부터 1억 달러의 기부금을 받았다. 학교는 이 기부금의 과실금으로 모든 신입생의 등록금을 면제하기로 했다. 이 대학의 1년 학비는 2만 3750달러다. 이 비용으로 학교는 475만 달러가 들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 돈으로 47억 정도의 돈이다. 이 기금 덕분에 예일 음대는 줄리아드나 커티스 대학과도 경쟁이 가능해졌다고 예상한다. 이미 음악계에서 상당한 명망을 쌓은 연주가들이 예일대의 문을 두드린다는 내용도 기사에 포함돼 있다. 남 캘리포니아 대학(USC)이 오래전부터 같은 방식으로 비올라 전공자들의 학비를 면제해 비올라 부문에서는 최우수 대학으로 군림해왔는데 그곳과의 경쟁도 이제 시작이라는 것이 뉴욕타임즈의 예측이다. 예일 음대는 지금부터 세계 최정상의 음악가를 교수로 스카우트하고 해외 우수학생도 더 적극적으로 유치하겠다고 선언한다. 지역사회 음악교육에 기여하는 계획과 새로운 시설을 보강하는 마스터플랜도 추진 중이다.
이틀 사이에 보도된 프랑스 낭테르 캠퍼스와 예일 음대의 두 기사는 180도 다른 대학상을 보여준다. 낭테르가 국가중심의 의무교육체제 40년이 만들어낸 버려진 지식공간에 가까운 국립대학의 모습이라면, 예일 대학은 철저한 경쟁을 기초로 민간의 자율을 보장하는 미국 대학의 사례다.
우리는 어느 쪽으로 가야하는가. 아무리 봐도 정부는 낭테르 쪽이고, 대학은 예일대 모델을 추구하는 양상이다. 프랑스형 모델을 추구하면 미래 세대를 파괴한다는 프랑스 교육장관의 경고를 주목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