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수원대 교수 | ||
조선왕조실록의 자리는 일본일 수 없다. 당연히 한반도다. 그런데 원래 오대산 월정사에서 보관하고 있던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이 어떻게 인연도 없는 도쿄대에 가 있었을까? 1913년 데라우치 총독은 월정사에 있던 조선왕조실록을 약탈해간다. 대체 그들은 왜 남의 나라 실록까지 약탈해간 것일까. 열심히 연구해서 식민사관의 뿌리를 내리게 하기 위함이었을까. 남의 나라 일기장까지 들고 갔으니 어렵고 서럽던 시절, 이 땅에서 숨쉬어야 할 문화재들은 또 얼마나 쉽고 허무하게 약탈되었을지. 문화재 약탈을 담당했던 취조국까지 있었으니. 덕분에 우리는 해외에 유출된 문화재가 가장 많은 나라 군에 속해 있다.
작년에는 처음으로 소리 소문 없이 약탈되었던 북관대첩비가 기분 좋게 돌아왔다. 문화재는 원래 존재했던 그 자리, 원소유국에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 유네스코 문화재 협약의 내용이며 시대정신이다. 그 흐름을 타고 월정사는 100년 전의 억울하고 기막혔던 기억을 떠올렸을 것이었다. 그리고 사명을 가졌을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가 꾸려지고 꼼꼼하게 도쿄대를 상대로 ‘실록환수’협상에 들어갔다.
협상은 성공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리하여 환수위원회는 당당하게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을 받으러 일본에 갔다. 그런데 문제는 예기치 않은 곳에서 발생했다. 그 사이 도쿄대가 서울대에 연락해 조선왕조실록을 서울대에 ‘기증’키로 하고, 서울대가 “도쿄대의 결정에 진심으로 감사한다”며 하사품을 받는 듯한 느낌을 주는 태도로 이에 응한 것이다. 더구나 서울대는 그동안 실록반환에 그토록 애써온 환수위원회와 한마디 상의도 없었단다. 물론 서울대는 그때까지 도쿄대를 상대로 조선왕조실록을 반환해달라고 요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세상에, ‘환수’되어야 할 문화재를 두고 ‘기증’이라니! 차라리 일본의 태도는 이해가 된다. 어차피 제 것일 수 없어 돌려줘야 할 것이라면 약탈이 부각되는 ‘반환’보다는 생색낼 수 있는 ‘기증’이 얼마나 매혹적인가. 그러나 서울대의 태도는 약삭스럽고 이기적인 것이었다. 도쿄대학의 분교, 경성제국대학이라면 모를까 대한민국의 지성을 대표하는 서울대학교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우리의 치욕적인 역사를 생각하고, 그 치욕적인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있다면 그것은 ‘기증’이 아니라 ‘반환’이고, ‘환수’여야 했다.
이 문제가 중요한 것은 이 땅으로 돌아오지 못한 숱한 우리 문화재를 되찾아야 하는 우리에게 이것이 문화재 되찾기 운동의 중요한 사례가 되기 때문이다.
작년에 북관대첩비가 돌아오는 과정은 참으로 유쾌했는데 이번에 실록의 귀환은 뭔가 상처받은 느낌이다. 그것도 우리 내부 사람들에 의해서. 우리가 다시 한번 성찰해보아야 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