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4일 세르비아는 러시아로 향할 27명의 이름을 발표했다.
세르비아는 E조에서 스위스와 치열한 16강 진출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세르비아는 본선 무대에서 브라질과 스위스, 코스타 리카와 맞붙는다.
추억의 케즈만. 한국에서 용산 전자상가를 거닐 때 아무도 못 알아 봐 ‘용산 케즈만’으로 불렸던 그는 네덜란드 득점왕 출신 세르비아 공격수였다. 사진=연합
1987년 20세 이하 청소년 월드컵 때 유고슬라비아 축구대표팀은 천하무적이었다. 황금 세대가 탄생한 대회였다. 이 대회에서 유고슬라비아는 브라질과 서독을 격파하며 정상에 섰다. 1일 대한민국 대표팀과 평가전을 벌였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감독 프로시네츠키가 이 대회 골든 볼 주인공이었다. 그 외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득점왕 다보르 수케르, 호나우두가 유일하게 자신의 경쟁자라 칭했던 미야토비치, AC 밀란의 중추 보반이 이 대회를 휩쓴 유고슬라비아의 중심이었다.
황금 세대는 잘 성장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때 유고슬라비아는 8강에 올랐다. 16강에서 스페인을 꺾었다. 8강에서 마라도나와 카니히아, 루게리가 이끌던 아르헨티나에 2대 3으로 아깝게 패했다. 아르헨티나는 이 대회에서 준우승을 거머쥐었다.
자연스레 유고슬라비아는 유로 1992의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다. 조별 예선에서 8경기 7승 1패로 덴마크를 제치고 예선 4조 1위를 기록했다. 당시 덴마크는 지금과 달랐다. 미카엘 라우드롭, 브라이언 라우드롭 형제와 피터 슈마이켈이 지키고 섰던 때였다. 유고슬라비아는 덴마크를 제치고 조 1위가 됐다. 당시 마케도니아 축구선수 판체프는 유고슬라비아 유니폼을 입고 예선에서만 10골을 때려 박아 예선 득점왕에 올랐다. 다보르 수케르와 미야토비치는 팀에서 판체프 다음 가는 공격수였다. 프랑스의 주전 공격수 장 피에르 파팽, 네덜란드의 판 바스턴, 데니스 베르캄프는 판체프 아래 있었다.
1992년 크로아티아가 독립을 시도하면서 국제축구연맹은 유고슬라비아의 유로 1992 출전권을 빼앗아 버렸다. 유로 1992 우승컵은 덴마크가 거머쥐었다. 예선에서 유고슬라비아에게 조 1위를 빼앗겼던 그 덴마크였다. 1992년을 기점으로 크로아티아가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독립하며 유고슬라비아 황금 세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유고슬라비아는 사라졌지만 깃을 세운 하얀색 원정 유니폼이 유독 잘 어울렸던 그들을 그리워하는 축구 팬이 많다.
예전 같지 않지만 세르비아는 여전히 탄탄한 선수 구성을 뽐내고 있다. 콜라로프와 이바노비치, 나스타시치, 밀렌코비치가 이끄는 수비진은 평균 나이가 높긴 하지만 세계 정상급에 꿀리지 않는다. 마티치와 타디치, 막시모비치, 밀린코치비-사비치가 버티는 허리도 정상급이다. 예전만 못한 공격진을 2선에서 지원할 예정이다. 공격에는 벨기에 리그를 평정하고 뉴캐슬 시절 문제아로 꼽혔던 풀럼의 미트로비치가 고군분투할 전망이다.
세르비아 예비선수명단 27인
공격수: 알렉산다르 미트로비치(풀럼), 알렉산다르 프리요비치(PAOK), 네마냐 라돈지치(레드 스타 베오그라드), 루카 요비치(프랑크푸르트)
미드필더: 네마냐 마티치(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두산 타디치(사우샘프턴), 아뎀 랴이치(토리노), 루카 밀리보예비치(크리스털 팰리스), 필립 코스티치(함부르크 SV), 안드리야 지브코비치(벤피카), 네마냐 막시모비치(발렌시아), 세르게이 밀린코비치-사비치(라치오), 마르코 그루이치(카디프 시티), 미야트 가치노비치(프랑크푸르트)
수비수: 알렉산다르 콜라로프(AS 로마), 브라니슬라프 이바노비치(제니트 상트 페테르부르크), 안토니오 루카비나(비야레알), 마티야 나스타시치(샬케 04), 두스코 토시치(베식타쉬), 우로스 스파히치(크라스노다르), 밀로스 벨코비치(베르더 브레멘), 밀란 로디치(레드 스타 베오그라드), 니콜라 밀렌코비치(피오렌티나)
골키퍼: 블라디미르 스토이코비치(파르티잔), 프레드라그 라이코비치(마카비 텔 아비브), 마르코 드미트로비치(에이바르), 알렉산다르 요바노비치(오르후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